아주경제 권이상·권경렬 기자=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잇따라 소송에 휘말리며 사업진행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최근 한달 새 대법원이 사업지 두 곳의 조합에 대해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고등법원이 문제없다고 결정한 판결을 뒤집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28일 대법원 3부는 길음1 재정비촉진구역(이하 길음 1재촉구역) 내 토지소유자인 김모 씨 등 5명이 서울 성북구청장을 상대로 낸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소송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도시정비법상 재개발 조합은 설립인가신청 시 해당지역의 토지 등 소유자 75%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데, 조합이 심사 시점을 신청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처분일(설립인가일) 기준으로 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신청일이 아닌 처분일을 기준으로 동의율을 산정하면 인가신청 후 소유권 변동을 통해 의도적으로 동의율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게 돼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비리나 분쟁이 양산될 우려가 있다"며 "조합설립인가를 위한 동의 정족수는 인가 신청일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길음1 재촉구역은 현재 사업시행인가 이후 조합원 분양까지 진행했고 올해 10~11월께 관리처분총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소송이 장기화하면서 사업 지연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성북구 도시정비과 관계자는 "지난 2009~2010년 이후 조합 설립인가 동의 정족수 판단 시점을 처분일에서 신청일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길음1 재촉구역은 인가 시점이 과도기여서 처분일 기준으로 인가된 것 같다"며 "판결에 따라 사업이 전면 백지화되진 않겠지만 향후 조합설립인가 취소가 확정될 경우 추진위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사업 추진이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측은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신청일 기준으로도 동의율 75%를 받았다는 관련 자료를 보완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예정대로 관리처분총회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앞서 지난 6일에도 윤모 씨 등 3명이 가락시영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사업시행계획 승인결의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 가락시영 조합 측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계획과 당시 결의는 별개"라며 사업 추진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다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5억3000만~5억4000만 원에 거래되던 가락시영 1차 전용면적 40㎡는 대법원 판결 이후 4억9000만 원까지 떨어졌지만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둘러싼 소송의 원인은 결국 주택경기 침체로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것과 추가분담금 '폭탄'을 맞은 조합원들의 불만 때문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많은 정비사업들의 일반분양 수익성은 낮아진 반면 물가상승 등에 따른 공사비 인상폭은 커져 사업비가 예상보다 늘고 있다.
실제 길음1재촉구역의 경우 사업비가 기존 3500억 원대에서 5800억 원대로 2300억 원가량 늘었다. 인접한 길음2재촉구역 역시 추가분담금 문제로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 구역의 사업비는 당초 알려진 3540억 원에서 5150억 원으로 증액됐다.
권순형 J&K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조합원들 간의 소송은 대부분 과도한 추가분담금 문제, 집행부의 투명성 결여에 대한 지적"이라며 "특히 지금처럼 주택경기 하락 등 부동산 불황일 때 추가분담금이 늘어나면 조합원들의 불만과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소송을 제기한 조합원들이 의도적으로 사업을 정지시키기보다는 조합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비사업 조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합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소송까지 진행한 사례"라며 "최근 법원 판결은 절차적 투명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시장 침체기일수록 오히려 시장에서 의구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명확히 해 신뢰감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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