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출발은 공직사회 개혁부터](8)대형사고 터트려도 처벌은 솜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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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5-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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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신희강 기자 = #1993년 10월10일 오전 10시20분.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362명의 승객을 태운 110t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출발 30분만에 침몰하게 된다. 당시 승선인원 362명 중에 70명만이 구조돼 292명이라는 사망자를 내는 대형사고에 불구하고, 실형을 선고 받은 공무원은 단 1명도 없었다. 502명이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를 낸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때에도 2명의 공무원만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11년 9월15일 한국전력공사가 예고 없이 5시간여 동안 전력공급을 중단하면서 공장과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초유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늦더위로 전국적으로 기온이 올라 냉방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교통 신호등이 꺼지고 아파트와 건물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면서 62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장관의 사임을 제외하고, 실무부처의 관료들은 모두 징계를 피해갔다.

관피아(관료 마피아)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복되는 대형 참사에도 불구하고, 이들 관피아들은 책임을 피해나가면서 철밥통의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것.

이들은 정책적 실패나 업무 소홀로 나라를 뒤흔들고도 경징계 수준에 그치거나 징계를 받지 않는다. 관행처럼 굳어 온 ‘솜방망이’ 징계가 이 같은 대형사고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당시 안전점검 일지를 허위로 작성했던 군산해운항만청 공무원 4명은 전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도 백화점 회장과 사장만 실형을 살았을 뿐 백화점 측의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은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2011년 9월15일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 역시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과장은 견책처분을 받았고, 담당 에너지실장과 에너지산업국장은 보직 변경만 이뤄졌다. 오히려 보직변경 결정을 받았던 에너지 실장은 지난 2013년 4월 퇴직하면서 산업부 산하기관인 산업기술진흥원장에 임명됐으며, 에너지산업국장 또한 같은 기간 통상분야의 초대 국장의 자리를 꿰찼다. 당시 견책 처분을 받았던 담당 과장은 법원에 소송을 내 징계취소 결정을 받았다.

이처럼 대형 사고가 터져도 관피아들은 형사처벌은 커녕 징계를 받는 경우조차 드물다. 실제 선박안전관리공단은 1급 간부가 선박 검사 점검표를 허위로 작성했다가 적발되는 등 최근 3년간 간부 4명이 선박 검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가 적발됐지만, 모두 내부 경징계인 ‘견책’만 받았다.

지난 5년간 3770건의 해양 사고로 사망 316명, 실종 326명 등 1266명의 인명피해가 났음에 불구하고, 사고를 낸 업체에 대한 면허 취소 사례도 단 한 건도 없었다. 최근 발생한 저축은행 사태, 신용정보 유출, 원전비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때도 양상은 비슷했다. 더 높은 도덕성을 유지해야 할 공무원들이 오히려 도덕불감증에 빠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안전불감증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되는 솜방망이식 처벌 관행에 대한 고강도 개혁이 필요하고 입을 모은다. 정부 차원의 감사와 징계를 대폭 강화하고, 과실과 공무 해태 행위에 대한 강력한 민·현사상의 책임추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나승철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고의성 입증이 필요한 공무원의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에 대한 민사적 책임과 행정적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립대학 행정학과의 한 명예교수는 “민간 사업자의 영리 추구 활동을 공익에 맞게 감독할 책임은 공무원에게 있다”며 “이를 소홀히 한 공직자의 책임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형사정책도 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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