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의 부름 같은 어머니의 불호령에도 게으른 몸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만 갔다. 눈도 뜨기 힘들었다.
특히 아침 자율학습이 있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정말이지 아침이 지옥 같았다. 억지로 씹어 넘기는 아침밥은 모래알 같았고, 학교 가라 등 떠미는 어머니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른 아침 힘들게 학교에 가서 책상에 앉는들 무슨 공부가 될까 의심이 들었다. 몽롱한 정신에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미국 최고의 공교육 시스템을 자랑하는 버지니아의 페어팩스 카운티(Fairfax County). 전국 최고의 과학고등학교인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와 여러 우수한 학교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교육환경 때문에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수많은 조기 유학생들이 몰리고 이민자들이 몰리는 곳이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와도 맞닿아 있어 생활수준도 제법 높다.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거나 또는 연방정부와 관련된 업계에서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한인들은 연방정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를 많이 하고 있다..
직장은 워싱턴D.C.에 있지만 실제로 거주하는 곳은 버지니아나 메릴랜드인 경우가 많다. 거리도 거리지만 심한 교통체증으로 출근 시간은 보통 1시간이 넘는다.
직장인 주부들은 출근 준비도 출근 준비지만 아이들 등교 준비를 챙기는 것도 큰 일이다. 한국과 달리 이곳은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그러니 제때 시간을 맞춰 나가지 못하면 가뜩이나 바쁜 직장인들은 아이들을 직접 학교까지 데려다 줘야 한다. 자녀의 지각을 막기 위해 부모가 지각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가운데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내년 가을학기부터 관내 고등학교 등교 시간을 1시간 늦추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페어팩스 카운티 학교 첫수업 시간 늦추는 방안 제안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카운티 교육청이 현재 오전 7시 20분에 시작하는 고등학교 첫 수업을 내년 9월부터 오전 8시 30분으로 늦추려 한다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등교 시간이 조정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첫 수업시간을 조정하게 된다. 초등학교는 오전 9시 15분, 중학교는 9시 30분으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등교시간을 늦춘 학교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고 폭력 등 각종 사고 가능성도 확연히 떨어진다는 연구결과 덕분에 힘을 얻고 있다.
미네소타대학 연구진은 등교시간을 늦춘 5개 학군 학생 9000 명을 대상으로 수면 시간을 분석한 결과 오전 7시30분 등교 때에는 학생들의 3분의 1만 8시간 이상 잔 것으로 조사됐다.
등교시간을 8시 30분으로 늦춘 뒤 학생들의 60% 가량이 8시간 이상 잠을 잤다고 밝혔다. 잠을 덜 잔 학생들의 우울증 및 약물, 알코올 섭취와 마약 사용률이 잠을 많이 잔 학생들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네소타 연구진에 따르면 청소년은 성인보다 잠을 유발하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 시간이 늦어 잠을 늦게 자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내일 학교 일찍 가야 하니까 빨리 자라"는 부모의 말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의 고등학교는 보통 오전 7시 30분~8시에 수업을 시작해 오후 3ㆍ4시면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첫 수업시간에 맞춰 스쿨버스를 타려면 오전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등교시간을 늦추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캘리포니아 롱비치와 조지아 데카투어, 오클라호마 스틸워터가 고등학교 등교시간을 늦췄다.
버지니아 페어팩스와 함께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 등 등교시간을 늦추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등교시간 변경으로 다른 모든 스케줄이 바뀌어야 한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방과후 수영을 해야 하는 학생의 경우 하교시간이 늦춰지면서 수영장 개장 시간에 맞춰 가기 힘들어질 수 있다.
직장을 가진 학부모들은 늦춰진 자녀의 등교시간 때문에 출근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등교시간 문제 때문에 계층 간 위화감마저 조성되고 있다. 소위 가진 자들은 아이들의 등교를 여유롭게 챙겨줄 전업주부 또는 도우미가 있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불경기에 힘들게 맞벌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등교시간 조정이 큰 부담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건강과 학업성취도'냐 아니면 '안정적인 생활패턴'이냐를 놓고 갈등 아닌 갈등이 빚어지면서 먼 훗날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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