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대한민국은 2014년 4월 16일 전후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시대가 될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전태일의 죽음이 근로기준법을 중심으로 한 사회변화를 가져오고 이한열·박종철의 죽음이 민주화의 분수령이 됐듯이, 이번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역량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119’로 걸려온 한 고교생의 전화. “살려주세요.” 2분 뒤 학생과 119, 목포 해경의 3자 통화. 이어진 세월호와 제주·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 9시 31분경 안전행정부로부터 최초의 보고를 받은 청와대. 그리고 연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아이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국가의 기본 책무가 사라진 순간. 한국 사회를 뒤덮은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래서 찾아갔다.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4선·안산 상록을) 여객선 침몰사고 공동대책위원장은 단호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6·25 전쟁 이후 최대 국란이자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노출된 사건”이라며 “(현재 상황은) 침몰하는 대한민국의 실종된 정부”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고통스러운 속내를 내비쳤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이 한국 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을 인식하게 된 초유의 사건”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어른의 한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구조해내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야당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정부를 향한 날선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명백한 인재다. 300명을 살릴 수 있었는데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 부재로 대참사로 이어졌다”며 그 근거로 △짧게는 50분, 길게는 4시간 정도의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는 점 △폭풍 등 천재지변이 없었다는 점 △해경 등 구조인력이 근접해 있었다는 점 등을 꼽았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기 때문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라며 “헌법적으로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무한 권력을 줬기 때문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대통령은 평생 사과를 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름 아닌 ‘골든타임’을 둘러싼 의문이다. 김 위원장은 “골든타임 때 희생자 구조에 실패한 원인은 정부의 세 가지 오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오판 정황을 명확히 제시했다. 첫째 대통령과 정부가 사고 당일 오후 6시 30분까지 선내에 300명이 갇혀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 벌어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 사태. 둘째 6825t급 세월호의 ‘침몰 시기’에 대한 오판, 셋째 해군 등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구할 것이란 ‘근거 없는 낙관’ 등이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의 정확한 사고인지 여부에 대해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의 진술을 보면, 대통령과 정부는 (지난달) 16일 오후 6시 30분까지 선내에 300명이 갇혀있는 것을 몰랐다”며 “그걸 오판해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당시 강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중앙대책본부는 앞서 오후 2시 구조자를 368명이라고 밝혔다가 오후 3시 30분에 해경 측의 정확한 숫자 집계 착오를 이유로 이를 뒤집었다. 하지만 중대본은 오후 6시 30분 또다시 구조자를 164명이라고 정정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당시 현장 지휘자는 선내 밖으로 나온 인원이 100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청와대는 후속대책을 지시했어야 했다”며 “이런 상황은 1차적인 게 아니냐. 1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듭 “청와대가 선실 내에 있는 300명의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선실 진입’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며 “이것은 현장에 없다고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오후 6시 30분까지도 아이들이 어선에 있는지 바다에 있는지 몰랐다. 정부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세월호의 침몰 시기 오판에 대해선 “9시에 목포항에서 출발한 해경은 11시에 도착한 뒤 24분 만에 선체 진입을 시도했다”며 “더구나 해난구조대(SSU)·해군특수전전단(UDT) 등은 오후 5시부터 실제 투입됐다”고 늑장 대응을 질타했다.
김 위원장은 이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 선장과 선주의 1차적 책임 등도 중요하지만, 골든타임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놓친 이유를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고 최후에는 박 대통령에게 있다”며 “그것이 헌법정신이다. 우리는 그걸 믿고 권한을 위임한 것이 아니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존립 이유가 없다”고 못 박았다.
일각에서 해경 도착 당시 좌현 60도가 기울어지면서 불가항력 주장을 제기하는 것과 관련해 “골든타임 정도면, 충분히 구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주장은) 선후, 경중이 뒤바뀐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헬기 레펠을 타고 내려온 해경은 갑판을 통해 선내 진입이 가능했고, 유리창을 깨고 진입할 수도 있었다”며 “구조자 이송의 경우 민간 어선에 맡겼으면 선내에 들어갈 시간이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국회 차원의 청문회, 국정조사, 특검(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애도 기간에는 야당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으냐”라면서도 “정부가 적극적인 구조에 나설 수 있도록 촉구하고 압박하는 것에 있어선 미흡했다. 너무 폼만 잡고 있었다”고 대여 강경론에 힘을 실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 무능론’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지적에 대해선 “지금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해내지 못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한 뒤 “이제는 야당 본연의 기능인 정부 견제와 비판을 하자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국정조사·청문회·특검·특별법 제정 중 ‘국회 청문회’가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청문회를 (먼저) 해야 한다. 그러면 많은 의혹이 드러나고 해결책이 제시될 것”이라며 “미진한 부분은 특검을 통해 책임을 진상규명하고, 국회 차원에서 위원회를 만들어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청문회와 특검 등을 거부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정부여당이 이를 안 받아들이면 박근혜 정권은 몰락한다. 이런 문제로 청문회나 특검을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최초의 특검인 지난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검 이후 10여 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진상규명을 한 적이 거의 없어 결국 여야 정쟁으로 막을 내릴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는) 여야가 없는 문제다. 정쟁으로 끝날 수 없다”며 “청문회가 열리면 여당이 더 많은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의 책임 소재 범위에 대해선 “내각총사퇴는 물론 청와대 조직개편까지 포함하는 대개편이 돼도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렵다”며 “적당히 무마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전면적 쇄신을 주문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콘크리트 지지율’을 보이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수직 하강하는 것과 관련해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50% 내외가 된다는 것은 민심을 잘못 읽는 일”이라며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현재 대통령 지지율은) 0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당 책임론을 거론하며 “우리 당이 대안세력이 못돼서 하는 수 없이 (대통령 지지로) 머물고 있는 것”이라며 당 차원의 쇄신을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청와대고 여야도 언론도 세월호 참사 본질에 근접하지 못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구원파니, 선장·선주의 문제니, 이런 것이 무슨 직접적인 관계가 있느냐”며 “일체 사족을 덜어내야 한다. 출발점은 골든타임에서 왜 못 살렸느냐다. 선후와 경중의 문제, 본질과 말단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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