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퇴직 이후 '퇴로'가 막힌 주요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늦어지는 관가 인사는 둘째치고, 퇴직 후 돌아갈 길이 없어지면서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 직면했다는 탄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재취업 폐지에 따라 승진을 미루는 고위직이 늘어나면서 인사적체 등 공직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파장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또 지연되는 관가 인사에 그간 공석상태였던 일부 실국장급 자리가 장기화되고 있어 업무공백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과 경찰 등 비전문가들이 이들 공무원을 제치고 산하 공공기관 요직을 꾀차고 있는 상황이라 무조건적 관료출신 배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일부 부처의 실국장급 자리는 3~6개월 이상 공석 상태가 이어지면서 업무 공백이 커지고 있다. 실제 기재부의 세제실 핵심 보직 중 하나인 관세정책관의 경우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째 공석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피아 논란의 중심이 된 해양수산부의 경우 기획조정실장, 해양정책실장, 수산정책실장과 중앙해양심판원장, 국립 수산과학원장 등 1급 5명이 사표를 제출해놓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산하 공공기관으로의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인사 국면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관료 출신이 유력하게 기관장으로 거론되던 인선은 아예 백지화됐고, 임원 인선을 위한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능력 있는 관료들을 무조건적으로 내치는 것이 관피아 철폐의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된 공공기관장 가운데 153명 중 국회의원 등 정치권 출신은 11.1%인 17명에 달했다.
기업의 주요 경영 결정을 내리는 감사나 사외이사 자리도 공무원이 아닌 군인, 경찰 등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낙하산 인사들이 줄줄이 꿰차고 있는 실정이다. 즉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주요 보직 자리에는 여전히 정치권과 권력기관 출신인 '정(政)피아'들로 채워지고 있는 셈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전문가들은 관피아 개혁의 포커스를 일방적인 배제가 아닌 사후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시스템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며 "관료출신이라는 무조건적인 배제가 아닌 임명된 사람에 대한 형사, 민사적으로 사후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를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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