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포스코가 재무구조 안정을 위해 투자액을 줄이는 사이 일본 철강업체들이 대대적으로 글로벌 생산 능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속되고 있는 엔저의 순풍을 타고 수요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일본 철강업계의 실적도 나아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포스코에 비해 한 발 늦었던 기존 일본내에서 제품을 수출했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자국 완성차 업체가 진출한 지역에 현지생산 기지를 늘려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제2 철강업체인 JFE스틸은 러시아 철강업체 세베스탈이 매각을 진행중인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위치한 일관 제철소와 미시시피주 콜럼버스에 소재한 전기로 박판 공장 등 2곳의 매각에 응찰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
세베스탈은 지난 2003년 미국 롯지인더스트리를 2억1500만달러에 인수한 뒤 그동안 총 14억달러를 투자해 현대화를 단행, 2012년 6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당시 계약은 러시아 기업 최초의 미국 투자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세베스탈은 디어본 제철소에서 직접 뽑은 쇳물을 통해 자동차용 강판을 일관 생산해 왔으며, 지난해 조강 생산량은 약 500만t이었다. 최근 들어 수익이 주춤하자 세베스탈은 철강 대기업들에게 매각을 타진하고 있으며, 향후 입찰을 실시해 최종 인수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디어본 제철소는 JFE 말고도 미국의 US스틸과 브라질 CSN 등이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향후 인수전이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다.
JFE는 향후 생산 설비의 상황과 투자 효과 등 세부 사항을 조사한 후 최종적으로 입찰에 응 하는지 결정한다. 1거점만 인수하거나 파트너업체와의 공동 입찰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금액 규모는 2곳을 모두 인수할 경우 총 1000억엔(한화 약 1조43억원) 이상이 것으로 보인다.
JFE가 인수에 성공한다면 일본 철강사중 처음으로 미국에 상공정(쇳물을 뽑아내는 공정)에 해당하는 일관제철소를 보유하게 된다. JFE는 북미시장에서 뒤쳐져 있는 자동차용 강판 생산거점으로 이들 공장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일본계 자동차 메이커가 북미에서 생산규모를 확대함에 따라 고품질의 자동차용 강판의 수요도 증가 하고 있다. 이에 JFE의 라이벌 업체인 신일철주금과 고베제강소도 북미에서 생산 규모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신일철주금과 아르셀로미탈은 지난해 독일 철강업체 티센크루프가 소유하고 있던 미국 앨라바마주 자동차용 강판 공장을 약 1500억엔(약 1조5000억원)에 공동 인수해 이 지역 자동차용 강판 생산 능력을 올해 전년 대비 3배인 300만t으로 늘릴 예정이다.
고베 제강소는 미국에 자동차용 알루미늄 합금 강판의 신공장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연비 규제 강화로 차체에 철보다 가벼운 알루미늄 합금 강판을 채용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대문과 보닛 등에 사용하는 자동차용 알루미늄 강판 수요는 2020년에 현재의 10배에 이를 전망이며, 고베 제강소는 도요타 자동차 등 일본계 자동차 대기업의 적용 확대를 노려, 현지의 공급 체제를 정비한다.
도요타 통상 및 미국 알루미늄 압연업체 와이즈 알로이와 공동 투자해 2017년 앨라바마주에 완공될 이 공장의 연산 능력은 10만 t규모로 투자액은 200억~300억엔에 달할 전망이다. 투자액 중 과반을 고베 제강소가 출자한다.
새 공장에서는 도장 성능을 높이고 표면 처리와 가공성이나 강도를 높이는 가열 처리를 한 알루미늄 강판을 생산한다. 이 제품은 철재 강판보다 고가지만 부품의 중량을 강판의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고베제강소는 중국 톈진시에서도 2016년부터 자동차용 알루미늄 강판 신 공장을 가동한다. 이를 통해 일본, 중국, 미국 등 알루미늄 강판 생산 세계 3극 체제를 확립해 성장 분야의 수요에 대응한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업체인 미국 알코어도 미국내 생산 능력 증강에 총 약 600억엔(약 6025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일본 UACJ도 2016년까지 유럽기업과 공동으로 미국에 공장을 신설한다.
지난해부터 진행되고 있는 일본 철강업체들의 움직임은 철강 부문에서 유일하게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자동차용 강판에서 밀리고 있는 경쟁력을 만회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심에는 ‘현지 생산을 통한 빠른 납기’다. 그동안 자국 자동차 생산업계와의 밀월관계를 통해 꾸준한 수요를 보장받아왔던 일본 철강업계는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포스코 등 해외 경쟁사 강판 채용이 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생산해 해외에 포진한 일본 자동차 업체들에게 강판을 배에 실어 보내는 기존의 방법만 고수했다가 현지에 가공센터를 세워 고객사가 원하는 납기에 맞춰 빠르게 공급하는 포스코에 물량을 빼앗기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에 일본 철강사들은 해외 생산 네트워크를 재정비 해나가고 있는데, 최근에는 신일철주금, JFE스틸, 고베 제강소 등 3사가 오는 2017년까지 아시아 지역 자동차 강판 생산능력을 오는 2013년말에 비해 80%를 늘린 연산 1100만t 규모를 완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단 포스코는 선제적으로 해외진출을 진행했고, 품질 면에서도 뒤처지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일본 업체들로부터 받는 영향은 미비할 전망이다. 다만, 권오준 회장 취임 후 재무안정에 힘을 쏟고 있는 포스코로선 당분간 투자 축소를 피할 수 없다. 일본 업체들의 반격을 막기 위해 한정된 예산에서 포스코가 어떻게 투자의 묘를 발휘할지가 관심거리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