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광연 기자 =지난 27일, LA다저스의 류현진 투수는 7회까지 퍼펙트 투구를 이어가며 전 국민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아쉽게도 메이저리그의 역사적인 순간은 뒤로 미뤘지만 미국 진출 이후 최고의 피칭을 선보인 그는 시즌 5승에 성공하며 ‘코리아 몬스터’의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날 뉴욕에서 다른 한 명의 한국인 투수가 역사적인 1승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분은 얼마나 될까요.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 프로야구 독립리그인 캔암리그 소속 락랜드 볼더스의 허민 투수입니다.
76년생 우리나이로 불혹을 바라보는 노장 투수인 허민은 같은 독립리그 소속의 퀘백 캐피탈스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해 6이닝 10피안타 4볼넷 1탈삼진 6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12대 9 승리를 견인, 시즌 첫승을 거뒀습니다. 지난해 9월 1일 공식 데뷔전 이후 8개월만의 일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허민 투수는 너클볼러입니다. 공에 회전을 거의 주지 않고 던지는 너클볼은 무회전 때문에 기류 영향을 심하게 받으며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구질입니다. 못 던지면 그냥 베팅볼이지만 제대로 들어가면 말 그대로 마구입니다.
허민 투수의 너클볼은 전설의 너클볼러인 필 니크로에게 전수받은, 전설의 계보를 잇는 명품이라고는 합니다만, 사실 던지는 모습을 보면 그냥 어깨에 힘 빼고 던지는 그런 공처럼 보입니다. 회전을 주지 않기위해 어깨로만 던지는 투구폼은 얼핏보면 여유가 지나치게 많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깨 힘 빼고’ 던지는 너클볼이 폭포수 커브와 고속 슬라이더, 광속 라이징 패스트볼 등이 난무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마구중에 마구로 꼽힌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의 인생 자체가 힘 빼고 던지는 너클볼과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1년 온라인게임사인 네오플을 설립한 그는 2008년 넥슨이 네오플을 약 3850억원에 인수하며 소위 ‘돈벼락’을 맞았습니다. 허민 투수가 다음해에 서울 강남의 미래에셋타워를 885억원에 구입했을때만 해도 대다수 세인들은 그가 뻔한 재벌의 삶을 살거라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정말 독특합니다.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사업에 휘적휘적 도전하다가 덜컥 소셜커머스 기업인 위메프를 설립하는가 하면 갑자기 야구단 구단주가 되고 싶다면서 고양원더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야구 선수가 되겠다며 훌훌 미국으로 떠나 독립리그 락랜드 볼더스에서 데뷔전을 치루기도 했지요.
일반적으로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어깨에 힘 주고 살기 마련입니다. 심하면 목에 깁스까지 하기 태반입니다. 막대한 돈을 번 사람이 어깨 힘빼고 살기란 쉽지 않은 법입니다. 아무래도 돈이 돈을 버는, 그런 신개념 자본주의 사회니까요.
그런데 허민 투수는 어깨 힘 빼고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는 모습입니다. 여전히 위메프의 오너이며 내로라하는 자산가지만 아무도 안 알아주는 미국 독립리그에서 너클볼 던지는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야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어깨 힘 쫙 빼고 말이지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을 타인이 함부로 재단할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성공한 누군가가 던지는 메시지 정도는 눈여겨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깨 힘 좀 뺴고 살자는 허민 투수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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