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잊어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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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6-0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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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가면 링컨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고 바로 옆에 한국전쟁 기념공원이 있다.

해마다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이 되면 한인참전용사 뿐만 아니라 미국인 참전용사들이 함께 모여 치열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전장에서 숨진 동료들의 넋을 기린다.

한국에서 대통령이나 정치인 등 주요 인사가 워싱턴DC를 들를때도 어김없이 이곳에 헌화하고 자유의 소중함을 되새기곤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잊어서는 안된다는 마음과 그리고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특별한 사람이나 사건을 상징하는 조형물 또는 공간을 만들어 애써 기억하려 한다.

어느 나라든 어느 민족이든 그러한 문화가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갖게 된 본능같은 습성이다.

며칠전 이러한 '잊지 않으려는' 뜨거운 마음들이 버지니아에 한데 모였다. 한국전쟁보다 훨씬 이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아픈 상처를 이억만리 먼곳 미국 땅에서 어루만지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2007년 7월말, 미 연방 의회에서 위안부결의안 통과를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워싱턴 정신대대책협의회가 또다시 큰 일을 해냈다.

이 단체가 워싱턴DC와 인접해 있으면서 미국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와 함께 그야말로 역사적인 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페어팩스 카운티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카운티 정부 청사 내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제막식이 지난 30일 열렸다.

페어팩스 카운티를 대표하는 섀론 블로바 수퍼바이저 의장은 "이번에 세워진 기림비가 인신매매와 같은 인권침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차세대에 교육시키는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자 워싱턴정신대대책협의회 회장도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한국방문 때 언급한 것처럼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한 성폭행과 같은 인권침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후세들에게 교육하는 차원에서 기림비를 건립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번 일을 준비하고 추진해온 단체측은 일본의 방해를 사전에 막기 위해 기림비와 평화공원 조성 예정지를 철저히 비밀에 붙일만큼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얼마전 버지니아 주의회가 관내에서 사용하는 모든 공립학교 교과서 지도에서 '일본해'와 함께 '동해'를 함께 표기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일본정부와 극우단체, 그리고 재미 일본인들이 바싹 약이 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도 문제지만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아픈 상처'를 '부끄러운 기억'쯤으로 치부하며 '기억하고 후세에 남기려는'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위안부와 관련된 이벤트나 관련 내용을 지역 언론이 다루면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고 한다.

내용인즉, '힘없고 못살 때 일본에 끌려가 치욕적인 일을 당한걸 창피하게 왜 자꾸 신문에 쓰고 방송에 내보내냐'는 것이다.

이러한 전화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남자 어르신들이 많다.

요즘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성폭행당한 딸이나 아내를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돌로 쳐죽이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데, 전화내용은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기사를 쓰지 말라며 전화하는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마치 치한에게 성폭행당하고 집안의 명예를 더럽히고 망신을 준 창피한 누이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2차세계대전 당시 수백만명의 유태인들을 죽이고 달아나 전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나치 독일군인들을 지금도 찾아내 법의 심판을 받게 함으로써 억울하게 숨졌던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수많은 한인을 학살하고 괴롭혔던 일본인 전범자들을 찾아내 심판은 하지 못할망정,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부끄럽다'고 말한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말이냐는 것이다.

세상에는 빨리 잊어서 좋은 게 있고 잊지 말아야 더 좋은 것도 있다. 잊기 힘들지만 잊어야 할 것이 있고,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쉽게 잊혀질 수 있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위안부 문제는 어느 쪽일까? 미국 땅에서까지 기림비다, 평화의 소녀상이다 하며 종군위안부 문제를 자꾸 끄집어 내는 이유가 뭘까?

위안부 문제는 억지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이 우리 할머니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기억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현재와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더더욱 기억해야 하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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