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은 “지욱을 유니크(unique)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질척거리기는 싫었다. 여성성을 표현하고 싶다고 해서 교태를 부리거나 진한 화장을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어느 순간 ‘아…저 친구 뭔가 이상하네’라고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말이지 그랬다. 호르몬 주사가 두려워 오므린 무릎을, 꼰 다리 위로 다소곳이 엇갈린 손목을, 컵을 쥘 때 살짝 치켜든 새끼손가락을, 뭉툭한 손톱이 야속한 듯 지어 보이는 새초롬한 얼굴 근육을 켜켜이 쌓아 여성이 되고 싶은 강력계 형사 지욱을 만들었다.
“태국 영화 ‘뷰티풀 복서(2003)’를 봤어요. 태국 복싱계를 제패하고 성전환 수술 후 배우 겸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농툼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죠. 농툼이 엄마와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는데…화장을 하지 않은 건장한 남성의 모습인데도 모녀의 대화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과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지욱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섬세’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차승원은 큰 키와 늘씬한 몸 등 우월한 체격 조건을 가졌으면서도 정통 액션에 도전한 적이 없다. 빈틈을 만회하려는 듯 핏빛 느와르 ‘하이힐’에서 쉴 새 없이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맨몸의 지욱이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조폭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은 마치 지욱과 ‘그녀’, 지욱과 ‘세상’의 싸움인 것만 같아 애잔하다. 큰 키 때문에 스턴트맨을 구할 수가 없어 100% 직접 찍느라 고생 좀 했단다.
‘제 1세대 모델 출신’ ‘모델에서 배우로의 길을 연 개척자’라며 치켜세웠더니 “아직 현역으로서 내 몫을 다해 내고 있는데 오래된 된장 취급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유전 발견한 것도 아닌데 웬 ‘개척’자냐”던 차승원은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싶다”고 말하고는 민망한 듯 호쾌하게 웃어 재낀다. 깊이 파인 눈가의 주름까지 멋스러운, 우리가 아는 ‘남자’ 차승원이다.
“‘차승원이 아직도 여전히 뭔가를 해내고 있구나, 나태해지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구축(개척이라고 말하고는 황급히 수정했다)해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우로서 성장해 가는 후배 모델들을 보면 책임감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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