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정부의 강력한 관피아(관료+마피아) 근절대책에 따라 관가에 나타난 '신풍속도'다. 일부 부처는 인사 적체를 해결하지 못하자 과장급 이하 사무관들은 일찌감치 민간기업 취업으로 선회하는 등 공직사회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곤 한다.
24일 정부세종청사 입주부처 공무원들에 따르면 관피아 근절 방안으로 산하기관으로 이동이 금지되면서 고위 공직자들의 갈 곳이 없어졌다는 반응이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 줘야 하는 입장에서 그나마 산하기관이 유일한 탈출구였는데 이마저도 가로막힌 것이다.
산하기관이 다른 부처보다 적은 기획재정부의 경우 상황이 심각하다. 실·국장은 이번 인사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대기발령이나 해외 주재관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일각에서는 관피아를 지나치게 인식하면서 공무원 인사 적체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낙하산 인사 근절은 좋지만 교류나 희망 전출에 대해서도 눈치를 보고 있어 공직사회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국장급 이하 과장들은 아예 승진 기대를 접었다. 일찌감치 민간기업을 알아보는 사무관들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과장 10년차는 승진을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가 공직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실제로 중앙정부부처 공무원 인력구조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호리병 현상이 심각하다. 승진경쟁이 치열해지는 이유다.
기획재정부는 전체 정원 966명 가운데 사무관과 서기관이 530명이다. 사무관급에서는 과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최소 5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5명과 경쟁해야하는 부담이 뒤따르는 것이다. 만성적인 인력적체현상이 반복되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재부의 경우 다른 부처와 달리 국·과장급은 철저하게 서열이 나눠져 있다. 대부분 각 부서 총괄국장이 차기 실장으로 낙점돼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같은 공식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국장은 없다. 국장 서열 2위라도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
기재부 국장급 관계자는 “공직사회도 시간이 되면 올라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언제든지 밀릴 수 있는 분위기가 높다”며 “그래도 예전엔 갈 곳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승진하면 이후 거취를 먼저 생각해야하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로 직격탄을 맞은 해양수산부는 한숨만 나온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곳에서는 향후 인사 방향에 대한 얘기가 단골메뉴로 떠오른다. 더구나 2013년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서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들이 대부분 D등급과 E등급을 받아 분위기는 더 침울하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산하기관들 평가가 모두 낙제점인데 어느 직원이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겠냐”며 “그렇다고 지금 자리가 보전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인사나 승진이 두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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