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극심한 내수침체 장기화로 성장을 수출에 의존하는 현 경제 상황에선 환율 하락은 치명적이다. 더구나 원화가 하반기에도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원화 강세에 따라 수출이 늘어났지만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수입 가격이 떨어져 국내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국내 소비 마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은 환율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등의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며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지 못했다.
정부가 직접 환율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양면의 칼날처럼 작용할 수 있지만 손놓고 있는 정부의 태도는 시장의 불신을 증대시킬 것이다.
◆원·달러 환율 심각 "과거 외환위기 재현 가능성 있다"
원화강세가 가져온 부작용은 심각하다. 수출기업은 수익성 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내수가 침체의 늪에 빠져 소비와 투자 등 내수의 경제 성장 기여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수출마저 둔화하면 한국 경제는 성장 동력을 모두 상실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연평균 수출 비중 50% 미만인 내수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3.2%였지만 수출 비중 50% 이상 수출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1.8%를 기록했다.
수출기업의 분기 평균 영업이익률 역시 수출기업의 2012년 3.7%에서 지난해 2.7%로 떨어졌다.
특히 중소기업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다. 환율이 세자릿수 시대를 맞게 되면 대기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겠지만 중소기업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수출 중소기업 94개사 가운데 환율 하락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된 곳이 91.5%에 달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대기업은 해외 진출 등으로 환율 영향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현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9일 열린 '하반기 환율 전망과 대책' 세미나에서 "과거에 원·달러환율이 균형치에서 과도하게 이탈하며 경상수지 악화에 따른 경제위기가 나타났다"며 "원화가 균형환율에 비해 고평가되는 현상이 중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에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연말에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을 기록할 경우 수입물가 하락을 통한 내수 진작의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수출 감소를 통한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 올해 경제성장률이 0.21% 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대했던 국내 소비 활성화 '증발'
통상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 가격이 내려가 구매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이번에는 그런 기대마저 사라지고 있다.
극심한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구매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신용카드 승인액은 작년 동기 대비 3.8% 증가해 4월의 5.2%보다 증가 폭이 둔화했다.
같은 달 소매 판매 역시 1.4% 증가에 그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의 -1.6%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원화가치가 급격히 치솟기 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하는 소비도 상당했으나 원화강세로 인해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줄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내수경기 침체 장기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도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10일 2.5% 금리 동결을 발표하면서 전반적으로 금리부터 환기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금리는 이미 14개월째 동결되며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환율정책으로 내수를 부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금리와 재정정책, 혹은 부동산 정책이나 정부의 규제완화 등 미시적 정책으로 내수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의 주시'만 하는 정부 대책은 언제쯤
지난 3월 25일 1079.4원을 기록한 원·달러 환율은 4개월도 안 돼 1000원 선을 무너뜨릴 기세다.
이런 급격한 변동에도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위시한 1기 경제팀의 환율에 대한 개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예의 주시" "쏠림 현상 바람직하지 않아" 등 간간이 원론적인 구두개입을 통해 환율의 심각성을 환기시킨 정도였다.
현 부총리는 지난 5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환율에 대해 정부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질타에 대해 "환율도 하나의 가격변수로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환율 안정에 대한) 직접적 방법도 고려할 수 있지만 다른 방법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시장안정화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새롭게 출범할 2기 경제팀의 수장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역시 미덥지 못하다.
그는 내정 직후인 지난달 13일 고환율 정책의 폐해를 지적하는 발언을 했다.
최 후보자는 "지금껏 한국은 수출해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니까 국민이 구매력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고환율을 강조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경제가 성장해도 국민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며 "대기업 수출이 늘고 경상수지 흑자가 쌓여도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면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환율 문제에 손을 놓고 있을 동안 수출기업들이 신음하고, 내수마저 침체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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