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3월 금융권에 숨은 규제를 없애라고 신제윤 금융위원장에 지시했다. 이 결과로 나온 개혁안 홍보비 부담이 협회를 통해 민간 금융사에 전가되는 꼴이어서 개혁은커녕 갑질 관행이 되풀이됐다는 지적이다.
◆"홍보비 4000만원 내라"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전일 오후 서울 태평로 청사로 5개 소관 협회인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를 불러 이날 내놓은 금융규제 개혁안 홍보비를 부담해줄 것을 지시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금융위도 인정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서민을 위한 금융상품인 햇살론이나 국민행복기금을 홍보할 때도 예산이 적어 업계로부터 분담금을 받았다"며 "금융규제 개혁안은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정책이어서 홍보비를 함께 부담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 협회 관계자는 "금융위가 제시한 액수가 크지 않아 모든 협회가 동참하기로 했다"며 "다만 업계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뿐 아니라 금융감독원은 정책에 대한 홍보비가 필요할 경우 많게는 수억원을 업계에 전가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이 각각 독립적인 예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분담금이라는 명목으로 업계에 손을 벌려 온 것이다.
◆"알맹이 없는 재탕"
박 대통령은 3월 20일 민관합동규제점검 회의에서 "금융권에 만연한 숨은 규제를 풀어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여기에 신 위원장은 상반기 안에 결과를 내놓겠다고 답했다.
금융권은 상당한 기대를 가져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면서 '알맹이 없는 재탕'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이번 개혁안에 들어간 유망기업 상장 활성화 대책은 4월에, 변동성지수선물을 비롯한 새 파생시장 개설대책은 6월에 이미 나왔던 것이다.
반면 증권업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업권간 비대칭 해소는 이번 개혁안에도 담기지 않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투자업계에는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주지 않으면서 은행에는 신탁업이나 장내파생상품업을 허가해줬다"며 "고유영역마저 빼앗는 것은 증권사를 죽여 은행을 살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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