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남자의 표상인 그의 지질한 모습은 영화 ‘신의 한 수’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 중에 하나다. 정우성은 내기 바둑으로 형(김명수)을 잃고 그 누명까지 쓰게 된 프로 바둑 기사 태석을 연기했다. 태석은 형을 살해한 살수(이범수) 무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교도소 복역 중 조직폭력배 두목에게 바둑을 가르쳐주고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는다.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나기 전인 극 초반 덥수룩한 수염과 금이 간 안경, 수더분한 머리로 애처롭게 ‘혀엉~’을 연발하는 못난 정우성의 모습은 시샘하는 대상의 빈틈을 발견한 것만큼 은밀한 즐거움이다.
“태석이라는 캐릭터의 완성은 프롤로그라고 생각했어요. 프롤로그 속 태석을 잘 완성해야 출소 후 변화된 태석에게 당위성이 생기기 때문이죠. 때문에 가장 신경 써서 연기했습니다. 못생겨진 기분이요? 재밌고 짜릿하던데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때 배우는 쾌감을 느끼거든요.”
“바둑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신의 한 수’ 시나리오는 참 재밌었다”는 정우성의 말은 일종의 이실직고다. 한국 최초의 바둑 영화라는 간판을 전면에 내세운 ‘신의 한 수’는 사실 한국 영화의 흥행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 성인 오락 액션 영화다. “바둑 공부 좀 했겠다”고 물었더니 “아무리 시간이 많이 들여도 제가 과연 프로 바둑 기사 태석만큼 바둑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정우성은 큰 키와 늘씬한 몸을 이용해 민첩하고 화려한 액션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비릿한 피냄새와 끈덕진 땀내음이 물씬한 액션신이 넘쳐나는데 정우성이 꼽은 가장 인상 깊은 액션은 고작 “딱밤”이다. “두 손가락으로 ‘신의 한 수’를 실현하는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액션의 포문을 손가락을 사용하는 딱밤으로 연 작가의 기발함에 감탄했”단다.
“‘비트’의 민을 지우기 위해 ‘신의 한 수’ 프롤로그 태석을 더 지질하게 연기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17년간 단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전작 캐릭터의 잔상을 없앨 요량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비트’는 저에게 벗어나야 할 굴레가 아니라 ‘신의 한 수’예요. ‘비트’를 사랑해준 관객이 제 손에 ‘신의 한 수’를 쥐여주셨으니까요.”
“세상이 고수에겐 놀이터요, 하수에겐 지옥 아닌가” 영화 속 주님(안성기)의 대사다. 데뷔 20년 차 배우 정우성에게 촬영장은 어떤 곳이냐고 했더니 신이 난 듯 목소리가 반톤 높아졌다. “당연히 놀이터죠. 촬영장에서 가장 행복하고, 촬영장에서 가장 즐겁게 놀 수 있거든요. 인생의 ‘신의 한 수’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더니 입꼬리를 스윽 말아 올린다. 과연 고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