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회에 임했지만 경기를 거듭하면서 세계적인 강호들과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김동현·27)
“이번 대회를 통해 ‘마당쇠’라는 별명도 생겼는 데, 기분 나쁘지 않다”(김호용·42)
14일 막을 내린 2014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를 통해 팬들을 열광시킨 히어로들이 탄생했다.
최초로 8강에 진출한 데 이어 세계 6위의 최고 성적표를 받아드는 감격을 누렸다.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한국팀 선수 모두 장애를 극복하고 감동적인 성공스토리를 쓴 진정한 스타가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크게 부상한 선수는 ‘올스타 베스트 5’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오동석. 키 1m70㎝, 체중 52㎏에 체격은 왜소한 편이다.
12세 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척수장애자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농구장에 들어서면 누구보다 빠르고 강한 ‘휠체어농구의 김승현’으로 변신한다. 별명도 ‘날쌘돌이’ ‘재간동이’ 등 다양하다.
그는 휠체어 농구 동호회를 거쳐 2010년부터 한국의 유일한 휠체어 농구 실업팀인 서울시청의 창단멤버로 뛰고 있다. 오동석은 팀을 국내 대회 전관왕을 이끌기도 했고, 지난해 아시아 오세아니아 대회에서 베스트 5에 든 바 있는 실력파다. 그러나 세계 대회에서 베스트 5에 뽑힌 건 오동석이 처음.
휠체어 농구는 장애인 스포츠 중 가장 격렬한 종목이다.
휠체어와 휠체어가 부딪혀 넘어질 정도로 터프하다.
오동석은 체격이 작지만 넓은 시야와 한 박자 빠른 패스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패스뿐만 아니라 3점슛도 정확하다.
지난 7일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팀 득점의 절반이 넘는 28점을 쏟아내며 55-46 승리를 이끌었다.
오동석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당초 목표였던 8강을 넘어서 6위라는 사상 최고 성적을 거뒀다.
8경기에서 112득점·26어시스트를 기록한 오동석은 “베스트 5는 혼자만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았다”며 기뻐했다.
그는 17세이던 2003년 복지관에서 농구공을 다시 잡았다. “어릴 땐 축구와 야구를 좋아했다. 휠체어에 앉은 후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다가 다시 농구를 하게 됐고, 그 이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토종 가드 오동석은 이번 대회 총 8경기에서 112득점, 35리바운드, 26어시스트, 스틸&굿디펜스 10개를 기록했다.
아직 미혼.
김동현은 한국 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이다.
그는 휠체어 농구 프로리그에 진출, 프로팀 ‘산토스테파노’에서 센터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가 오른쪽 다리를 잃은 것은 6살 때. 좌절에 빠진 그가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농구였다.
“어렸을 땐 장애를 비관했었어요. 의족을 차고 걷는게 부끄러웠죠. 그걸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억지로 비장애인처럼 걸으려 했던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넘어져서 다치기도 하고….”다소 내성적이었던 성격은 운동을 시작한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농구를 시작한 다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고 할까. 이젠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더운 날엔 반바지도 입고 그래요. 있는 그대로, 보여줄 건 보여주자. 이게 다 나 자신의 모습인데, 과감해지자.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팀 소속인 그가 이탈리아로 스카우트 된 것은 2012년 12월. 2010년 영국 버밍엄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펼쳐진 그의 활약상을 눈여겨 본 산토스테파노팀 측이 제안해 이뤄졌다.
당시 김 선수는 생활체육지도사인 권아름씨와 웨딩마치를 올린지 3개월째인 새신랑이었다.
김 선수는 아내와 상의 끝에 러브콜을 받아들이기로 결정,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김동현-권아름 부부는 지난 3월 귀여운 딸을 낳았다.
휠체어농구의 서장훈이라고 불리는 김동현은 세계 최상 호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표팀은 12일 8강전에서 우승후보 호주에게 50-61로 패했다.
김동현은 4쿼터 막판 퇴장을 당하기 전까지 18점, 9리바운드로 맹활약했다. 장신의 호주선수들을 맞아 물러섬이 없었다.
경기 후 김동현은 “강팀 호주를 맞아 즐기면서 하자고 했다. 하다보니까 충분히 붙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한국은 3쿼터 막판 조승현이 휠체어높이 규정을 1cm어겼다는 뜻밖의 이의제기로 퇴장을 당했다.
이후 한국의 추격세가 꺾이고 말았다. 김동현은 경기후 “선수층이 얇은 한국팀에게는 가장 큰 변수였다. 아쉽다. 국제대회에서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호주도 코너에 몰렸다는 것이고, 한국이 만만찮았다는 것 아니겠는가. 호주를 더 괴롭혀주고 싶었은데…”고 설명했다.
원래 1m89cm의 신장에, 승부근성도 좋고, 스프츠 지능도 뛰어난 편이다. 이번 대회 총 8경기에서 1백22 득점, 88 리바운드, 16 어시스트, 9 스틸&굿디펜스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한사현 대표팀 감독은 “워낙 파워와 파이팅이 좋은 김동현인 데 이번에 좋은 경험을 했다”며 “슛 정확도를 좀 더 높이는 등 조금만 보완하면 대형 스타가 될 만하다”고 평가했다.
한 감독은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물오른 그의 기량이 다시 한번 불을 뿜는다면 9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도 바라볼 만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이란을 물리친 한국은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큰 자신감을 얻었다.
김동현은 “자만하면 안 된다. 집중하고 긴장만 한다면 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호용(42)은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전천후 선수이다. 가드 오동석이 ‘선장’ 혹은 ‘지휘자’, 센터 김동현이 ‘서장훈’ ‘기둥’이라면 김호용은 ‘마당쇠’이다.
힘이 좋아 수비, 인터셉트, 리바운드,속공 등 모든 면에서 활약하지만 특히 체력 좋은 외국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이겨내며 버티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한 때 삼성이 지원하던 무궁화전자팀(수원) 소속으로 뛰며 팀을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무궁화전자 소속 휠체어농구 선수들은 기업체 후원이 끊기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김호용의 지금 소속은 제주특별자치도. 그러나 그는 생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여건상 경기도 성남에 소재한 휠체어 제조 업체 휠라인에 근무하며 업체측 배려를 받아 틈틈이 운동을 계속해왔다. 그는 가끔씩 무궁화전자팀 코트에 나가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는 봉사활동과 본인의 연습을 병행한다. 그것이 인연이 돼 그는 무궁화전자팀 여성 주무와 결혼도 했다. 그가 ‘주경야독파’가 된 또 하나의 이유다.
그는 성격도 낙천적이고 활달하다. 이번 대회에서 1백 득점, 48 리바운드, 36 어시스트, 21스틸&굿디펜스로 맹활약한 김호용은 “원래 고향 경남 창녕에서 양파 농사를 짓다 휠체어농구가 좋아 선수가 됐는 데 나이로는 코치로 뛸 나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자신감을 더 얻었다”며 “앞으로 체력이 허용될 때까지 많은 외국 선수들처럼 운동에 전념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농구협회 남경민 사무국장은 “한국이 이번 대회에 6위라는 좋은 성적을 내게 된 데는 김호용 같은 고참이 궂은 일을 도맡는 투혼으로 경기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뺏기기 않았기 때문”이라며 “국내에도 실업팀이 좀 더 생겨 팬들이 주말에 휠체어농구 리그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임기가 만료되는 캐나다의 마린 오차드 세계휠체어농구연맹 회장은 “대회가 매우 성공적으로 치러져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이를데 없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의 휠체어 농구 저변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새 회장으로는 독일의 울프 머렌스가 선임됐다.
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장실(59·새누리당) 의원은 “휠체어 농구는 어느 정도 경제 여건이 돼야 할 수 있다. 한국에도 실업팀이 좀 더 창단돼 아시아 휠체어 농구의 보급과 발전을 이끌게 될 것”이라며 “휠체어 농구를 통한 스포츠 한류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14일 열린 결승전에서는 호주가 미국을 63-57로 꺾고 우승했다.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10일간 펼쳐진 2014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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