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 “여성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양성평등은 저출산·고령화, 소득 3만 불 시대 진입 등 지속 가능한 성장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꼭 이뤄내야 할 아젠다입니다.”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을 그만두고 지난 2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으로 취임한 김 행 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양성평등 문화 확산을 통해 심각한 저출산 문제 하나만 해결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고학력 여성 경력 단절 심각…여성경제활동참가율 높여야 3만 불 시대 진입 = 김 원장은 우리나라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구조적 문제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와 국민소득 2만 달러 장기 정체, 가족 가치 붕괴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김 원장은 “양성평등을 기반으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가정, 직장, 사회 구조로 빨리 바꾸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이 손해라고 여자들이 생각하는 한 저출산·고령화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특히 국가 핵심 성장동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잠재적 고급 인력인 여성들인데, 고학력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 문제로 인해 심각한 경력 단절 상태에 놓여 있다면서 이들이 재취업 하게 되더라도 대다수는 결혼 전보다 하향 해 질 낮은 일자리로 가게 된다고 밝혔다.
7년 째 1인 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을 높여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령화율은 급증하는데 경제 활동 참가율은 정체 상태다. 남자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71.7%로 거의 완전 고용 수준에 가까운 반면 여자는 50% 이하다. 노동력을 더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여성 쪽이다. 집에 있는 고학력 여성들에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3만 불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그는 붕괴되고 있는 가족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도 양성평등 문화가 확산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남성은 바깥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집안일과 육아를 맡아야 한다는 전통적 가부장 인식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남편, 아빠의 자리는 가정에서 사라지고 있어요. ‘저녁이 있는 삶’이야말로 가족의 가치 재정립, 일자리 나누기, 출산율 제고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남녀가 함께 아이를 만들고 키우고 함께 일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 남녀 융합 경계선에서 창조 경제 꽃 피울 수 있어 = 진정한 양성평등은 양성 융합이 이뤄질 때 가능하고, 양성 융합의 경계선에서 창조 경제가 꽃 피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 경제는 경계선에서 피는 꽃이라고 강조했는데, 농업과 문화가 만나 ‘친환경’·‘관광’이라는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고, 음악과 IT의 만남도 싸이의 노래가 유투브를 통해 전세계적인 붐을 일으키지 않았나. 남녀도 마찬가지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처럼 전혀 다른 성이 만나 함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만들고 키워나간다. 가정에서 부부가 평등해야 사회적으로 양성평등이 이뤄진다. 그러면 사회·경제·정치 구조가 바뀌고, 사회·국가가 발전한다. 벤처기업이 몇 개 생긴다고 창조 경제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 남녀가 함께 일할 때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
그는 주방 가구의 대명사로 각광 받고 있는 기업 ‘한샘’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한샘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 인테리어, 가구를 만드는 것은 남성의 몫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용자는 결국 여성이라고 보고, 여성들을 대거 채용해 기획 단계에서 부터 제작까지 참여토록 했다. 부엌, 침실, 욕실 인테리어에 여성적 시각이 들어가면서 디자인은 물론 효율적이고 안락함까지 더했다. 한샘은 현재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며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 기업·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업 임원 30% 쿼터제 강제 의무화해야 = 김 원장은 특히 “여성이 고위직으로 가야 우리 사회가 수평적 리더십의 구조로 바뀌고. 그래야만 21세기 세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OECD국가들과 비교해 너무 낮은 수준이다.
지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녀의 상대적 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성격 차지수(gender gap index)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해 세계 136개국 중 111위에 그쳤다. 부처 장관 등 여성 고위 공무원 비율은 전체 공무원의 3.7%밖에 되지 않는다. 19대 국회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5.7%로 189개국 중 91위다. 민간 기업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대기업 등 민간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기업 여성 임원 20~40% 쿼터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전 세계적 시류와도 맞지 않는다고 김 원장은 꼬집었다.
“‘핑크 쿼터제’를 도입한 노르웨이는 지난 2006년 전 공기업에 여성 임원 40% 할당을 의무화하고 2년 유예 기간을 뒀는데, 2008년까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위반 기업을 해산할 수 있도록 회사 법을 개정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노르웨이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졌는가, 그렇지 않다. 현재 22개국에서 노르웨이의 핑크 쿼터제를 채택하고 시행하고 있다. 벨기에,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필리핀, 홍콩 등 여러 나라들이 모든 공기업에 여성 임원 30~40% 할당제를 채택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때는 향후 어떻게 시정할 것인지 반드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 방향은 현재 민간 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김 원장은 “우리 기업에서도 일정 부분 여성 임원 확대에 노력을 하고 있긴 하지만 미비하다”면서 “기업 여성 임원 쿼터제는 이미 제 3의 여성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각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임원의 20%를 여성으로 채우는 쿼터제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 양성평등은 인권의 문제 = 김 원장은 양성평등은 '인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고, 인권에 관한 인식의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흑백 인종 문제는 민주주의, 정의,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여성 차별은 그 인식이 떨어진다. 성폭력, 가정 폭력, 성희롱, 성매매 등 모든 문제의 해결은 인권의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는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교과 과정과 교육 프로그램을 인권의 문제로 전환하도록 개편하고, ‘다문화’ ‘노동법’ 등 여성들이 가장 차별을 받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가들을 초빙해 교수진으로 인선했다.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다. 개인의 인권이 보장이 되는 나라가 돼야 하지만 개인도 행복하고 그 개인들이 만나서 결합한 가정도 행복해진다. 가정이 행복해져야 사회도 행복해지고 결국 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인 '국민 행복'도 궁극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1959 서울 출생 △1981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졸업(석사), 2009 연세대 및 서강대 박사 과정 수료 △1986~1994 한국사회개발연구소조사부장 △1994~2001 중앙일보 전문 기자 및 전문위원 △2001~2002 디 인포메이션 대표이사 △2002 국민통합 21 대변인 및 기획본부장 △2003~2004 청주대학교 사회학부 겸임 교수 △2009~2012 소셜뉴스 위키트리 부회장 △2013 대통령 비서실 대변인 △2014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주요 저서 '소셜로 정치하라'(2012)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