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유럽연합(EU)이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피격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책임자들의 자산동결 등 추가제재 조치를 모색하고 있으나 회원국간 입장차가 뚜렷해 러시아에 직접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AP통신에 따르면 EU 외무장관들은 2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회원국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러시아 관리들에 대해 비자발급 중단과 자산동결 등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지 않을 경우 무기수출금지, 에너지, 금융 부문을 포함한 ‘3단계 제재’에 나서줄 것을 EU 집행위원회에 요구했다.
이는 그간 EU는 2단계 제재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세력 72명, 크림반도 2개 에너지 기업 등 일부 관련 대상을 제재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아울러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에 사용된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친러 반군에 공급한 러시아 관리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러시아와 경제관계가 밀접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은 수위를 높인 대(對)러시아 제재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제재안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가 제재에 반대해 왔고, 프랑스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에 실망감을 나타내면서도 오는 10월 러시아와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인도하기로 계약한 상태여서 무기금수에 동의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무역과 에너지 부문 등에서 러시아와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도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기업 단체인 동유럽경제관계위원회(CEEER)는 제재 부과로 위기가 고조되면 독일에서 2만5000개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에 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스웨덴과 영국, 구소련 국가 일부는 강력한 제재안 부과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특히, 영국은 러시아를 상대로 자본시장 접근 제한을 주장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전날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은 상황을 크게 바꿔놓았다”면서 “러시아가 다른 유럽 국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전쟁을 부추긴다면 유럽 시장과 자본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제 제재를 경고했다.
그 가운데 러시아와 밀접한 경제무역 관계를 맺고 있는 핀란드는 EU의 경제제재 결정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일주일 만에 입장을 바꾸고 EU의 제재 수위 상향조정 결정을 지지하기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이에 핀란드 산업계는 러시아가 주요수출국인 만큼 이번 결정으로 러시아 석유·가스 생산업체들에 대한 수출길이 막혀 핀란드 경제가 충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핀란드경제인연합회의 카이 미카넨 국장은 “핀란드 산업생산이 0.5%포인트 하락하고,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EU가 개별 인사에 대한 2단계 제재를 넘어 고강도 수준의 3단계 제재를 러시아에 부과하게 되면 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일부 유럽의 은행과 제조업체 등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 방안을 찾을 때까지 생산 작업이나 거래를 유보하는 등 러시아 기업과의 거래에서 자체적으로 제재를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EU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서면 이러한 대러시아 제재 움직임은 공식화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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