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건설사들의 담합이 적발되는 것은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최저가 낙찰제와 실적공사비 등 비정상 발주 방식이 원인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항변이다. 하지만 강력한 입찰 제한 등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담합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28개 건설사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 4355억원은 역대 전체 담합사건 중 둘째, 역대 건설업계 담합사건 중 가장 많은 액수다.
과징금 액수는 삼성물산이 835억8800만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대림산업(646억5000만원), 현대건설(597억5900만원), SK건설(247억8400만원), 동부건설(220억3200만원), 한진중공업(205억5600만원) 등 순이다.
대형 건설사인 A건설 직원은 “공정위 판결 후 의결서가 도착하려면 한 달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며 “그때까지는 회사 차원에서 공식 대응은 내놓지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단 과징금 규모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은 편이다. 지난 23일에는 대형 건설사 사장단이 과거 불공정 행위를 반성하고 공정경쟁과 준법경영을 다짐하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는데 과도한 처사 아니냐는 것이다.
B건설 관계자는 “담합이 여러 차례 걸려 누적 과징금이 많은데 이번 담함 적발에 따른 과징금 규모가 큰 것이 걱정”이라며 “영업이익이 크게 이익 난 회사라면 몰라도 이익 폭이 적거나 적자인 건설사는 과징금 빼면 남는 것이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건설사들은 최저가낙찰제 등 정부의 비정상적인 발주 방식이 담합을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규모 공사의 경우 발주처 편의를 위해 공구를 나눠놓고서는 나눠진 공구를 각각 맡은 부분이 담합으로 몰려 억울한 점이 없지 않다고 호소했다.
건설업계의 어려운 입장은 알겠지만 담합은 불공정 행위이며 정부가 단호히 이 관행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많다. 이번 담합 적발은 인천도시철도 2호선, 대구지하철 공사, 경인운하 사업에 이어 올 들어서만 네 번째다.
발주처는 공정위의 담합 판결이 내려지면 해당 건설사를 부정당업체로 지정하게 된다. 이런 경우 해당 업체는 일정기간 발주처의 모든 공공공사에서 입찰이 제한된다.
그러나 곧바로 건설사들이 입찰 제한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게 되면 대부분 법원이 받아들여 최종 판결까지 입찰이 가능해진다. 건설사의 가처분 소송이 이어지면 입찰제한이 사실상 큰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처분 소송만 적어도 1년 이상이 소요되고 이후 법원이 장기간 입찰 제한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담합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최저가 낙찰제 등 개선도 주요 관심 사항이다. 건설업계는 그동안 정부를 대상으로 비정상적인 발주 방식의 개선과 과도한 중복처벌 금지 등을 요구했다.
최저가낙찰제란 300억원 이상의 공공공사 발주 시 최저가를 써내 입찰에 참가한 업체에 시공권을 주도록 한 제도다. 건설업체간 덤핑 수주에 따른 부실 및 담합의 원인으로 지목돼 현재 종합심사낙찰제가 대안으로 낙점됐다.
공공공사 예정가격의 중요 산정 기준 인 실적공사비는 계약단가를 활용해 공사비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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