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김효곤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김부원 기자 = "작년에는 가계의 빚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국민행복기금으로 빚을 탕감해주더니 이젠 거꾸로 대출을 더 많이 받아서 집 사라는 얘기 아닙니까."
최근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완화 정책이 발표되자 한 금융소비자가 황당하다는 듯 털어놓은 말이다.
지난해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금융정책의 최대 화두는 가계부채 축소였다.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는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국민행복기금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정부는 대출 규제까지 풀면서 정책방향을 급선회했다. 이같은 정부의 오락가락 금융정책을 두고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 출범과 LTV·DTI 완화를 둘러싸고 정부의 엇갈린 금융정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계부채를 축소하겠다는 것인지, 가계부채가 늘더라도 경기부양이 최우선이라는 것인지 정책의 성격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29일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은 1년간 총 24만9000명의 채무조정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1인당 평균 576만원이 감면됐다. 국민행복기금 도입 당시 다중 채무자들의 빚을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는 점에서 형평성 및 도덕적 해이 논란이 상당했다.
그나마 스스로 회복이 불가능한 선의의 채무자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국민행복기금이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해소할 대안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꾸려진 2기 경제팀은 국민행복기금을 잊은 듯 연일 경기부양에 강력한 시동을 걸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부동산시장을 살리기 위한 LTV·DTI 완화로,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되레 빚을 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참여연대는 "빚 내줄테니 투자하고 집을 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부채 증가에 의한 성장 패러다임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위험하다"며 "서민 가계부채에 대한 채무조정 등을 통해 가처분소득 증가와 거시경제의 안정성 확보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LTV·DTI 완화로 오히려 가계부채의 질이 개선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이 빗나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금융연구원은 LTV·DTI 완화가 소득계층별로 서로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산층 이상은 비은행권 고금리대출을 은행 저금리대출로 전환해 부채의 질을 개선할 수 있겠지만 저소득층은 부채의 총규모만 늘어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및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생활비·사업비 대출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늘어난 대출여력만큼 돈을 더 끌어 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욱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로 꼽힌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그동안 대출 억제를 고집하다 갑자기 공급 중심으로 선회했다"면서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에 일관성이 없고, 금융당국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정책 방향을 바꿀 게 아니라 그동안 추진했던 가계부채 대책이 얼마나 적정했는지 명확히 평가하고, 본질적인 가계부채 해결방안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