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공동취재단) = 16일 오전 대한민국 광화문 광장은 '비바 파파'로 울렸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공식 초청을 받은 신자 17만명과 교황을 보려는 시민등 100만여명의 구름인파로 뒤덮였다.
오전 10시. 서소문성지를 참배하고 온 교황이 순교자들의 희생을 상징하는 붉은색 제의를 입고 제단에 오르면서 '시복미사'가 시작됐다. ‘시복(諡福)’이란 가톨릭에서 신앙과 덕행을 인정받은 사람들에게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 칭호를 부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안명옥 주교와 많은 형제 주교들과 신자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시성부의 의견을 들은 다음, 본인의 사도 권위로,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29일에 그분들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고 시복 선언을 했다.
한국 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이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 중 최대 하이라이트인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 선언을 하자 감격에 겨운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교황이 순교자의 땅을 직접 시복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통상 시복미사는 바티칸에서 교황청 시성성 장관 추기경이 교황을 대리해 거행해왔다.
이날 순교자 124위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로 열리는 시복식이다. 앞서 일제 강점기인 1925년(79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8년(24위)에 열린 시복식은 모두 로마에서 열렸다. 이때 복자품에 오른 순교자 103위는 1984년 성인품에 올랐다.
시복미사 시작은 오전 10시였지만,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한 시민들로 인해 광화문광장은 오전 8시부터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시민들은 성가를 부르면서 미사를 기다렸다.
오전 8시20분 안내 방송과 함께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공연을 시작했다. 검정 정장을 입고 등장한 백건우는 광화문을 바라보고 좌측에 마련된 그랜드 피아노로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두 개의 전설’ 중 첫 번째 곡인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8분간 연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본받겠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266명의 교황 중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했다.
오전 8시50분께 묵주기도 중 전광판에 교황이 탄 차가 서소문 성지로 진입하는 모습이 나오자 시민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비바 파파”를 외치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았다.
오전 9시9분께 전광판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문에서 퍼레이드카인 흰색 카니발 무개차로 갈아타는 모습이 중계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코리아나 호텔 근처에서 잠시 멈춰 서서 어린이의 머리에 입맞춤하자 함성은 더 커졌다. 경호원이 데려 온 아기 머리 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손을 얹자 아이는 울상을 짓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황’했지만, 신자들은 그 모습을 즐겼다
한편, 교황의 시복 미사를 지켜본 신자들은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의 농아인 정종옥(55)씨는 “교황님의 행보가 예수님과 닮아 많은 감동했다. 오늘 이 자리가 인생의 큰 축복이 될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농아인들은 소통이 더뎌 사회적으로 소외됐다. 교황님이 세계 가톨릭 농아인들이 한곳에 모인 자리를 마련해 우리에게 힘을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통일돼 남북 가톨릭 농아인들이 함께 미사를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씨를 수화통역을 한 자원봉사자 권영미(48·장애복지협의회)씨는 “사회적 배려와 나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황님의 방한을 계기로 차별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한없이 기쁘고 떨린다. 이런 기회, 다시는 없을 것 같다”고 가슴벅차했다.
지체장애 1급 강동훈(43·영등포장애인복지협의회)씨도 “얼떨떨하다. 교황님이 평화와 화해를 강조하셨는데 하루빨리 남과 북이 하나가 돼 교황님을 다시 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겸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인상 깊다는 시민도 많았다. 대학생 박민수(23)씨는 “낮은 자세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교황님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교황님의 말씀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더욱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교황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평생 가슴속에 남을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두 번 다시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왔다.
두 살과 열두 살, 두 딸과 함께 인천에서 온 이정희(38)씨는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다시는 세월호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황님이 많은 기도를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교황님이 어린이들을 매우 사랑하시는데,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시복 미사를 마친 교황은 이날 오후 충북 음성 꽃동네로 이동했다. ‘희망의 집’과 ‘태아동산’ ‘사랑의 연수원’ ‘사랑의 영성원’ 등에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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