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으로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가 거행됐고 외신들은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AP는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명의 인파가 교황을 맞았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며 “시복식이 열린 광화문광장에서 18세기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이뤄졌다”며 다른 나라와 달리 선교사의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전파되고 뿌리 내린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전했다.
전 세계에서 천주교는 선교사에 의해 전파됐다. 이에 대해 선교사의 천주교 전파가 결과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에 도움을 줬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온 18세기는 신분제도 등 조선 사회의 모순이 그 폐단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그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이 나날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천주교는 실학과 결부돼 실학자들에 의해 연구됐다. 천주교의 인간 평등 사상 등은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으로 받아들여졌고 신분제도 등에 의해 고통받는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하지만 당시 조선 집권층의 입장에서는 천주교 확산은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고 이는 대대적인 박해로 이어져 200여년 동안 1만명 정도가 순교했다.
이런 모진 박해에도 천주교는 서서히 뿌리를 내렸고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해방과 분단 후 한국 천주교는 군사 독재 정권 치하에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종교를 떠나 전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런 한국 천주교의 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시복미사에서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한국 땅에 닿게 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지 않았고 한민족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됐다"며 한국 천주교 역사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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