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조각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제 조각을 보는 사람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보기만해도 배시시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처럼 작가도 그랬다. 작고 귀여운 친근하고 푸근한 느낌을 전한다.
40여년간 돌을 파며 자박자박 걸어온 조각가 한진섭(58)이다.
석조각가. 작가는 '화강석'을 밀가루처럼 주무른다.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돌. 이 돌은 국민화가 '박수근' 그림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오돌토돌한 흔적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대표하는 돌이다. 대리석이 명품패션같은 세련미를 풍긴다면 화강석은 둔탁하면서 좀 촌스러운듯 하지만 꾸미지 않은 따뜻함,정감이 느껴진다.
이 돌의 참 맛을 잘아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내어준다. 전시장에 고고하게 서서 관람객을 내려보는 듯 '만지지 마세요' 조각이 아니다.
작고 낮게 전시된 작품들은 만지고, 심지어 앉아 볼수도 있다. 단발머리를 한 어린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의자는 한쪽이 비어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소녀의 옆에 나란히 앉으면 또다른 작품이 탄생된다.
이런 작품이 나오기까지 억울함도 있었다. "우리라나에서 석조는 없어도 되는 것이였죠. 조각을 해도 전시장에 가보자하는 사람들도 없었어요."
한진섭은 "그래서 생활속에 확 들어가고 싶었어요. 테이블, 벤치를 만들고 관람자가 작품에 적극 참여하게금하자"고 생각을 바꿨다. 이런 개념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일이다.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이태리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한 '엘리트 조각가'의 도박이었다.
"왜냐하면, 순수미술에서 예술은 용도가 없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그런 조각은 '공예적'이기 때문이죠. 조각가들은 이런점을 배제했죠. "
하지만 그는 첫 전시를 '휴식'을 주제로 벤치와 함께한 조각을 만들어 '공예적'으로 갔다. 굉장한 부담은 떨칠수 없었다. 하지만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방명록을 보니 앉을수 있게해서 고맙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게 됐구나 했죠. 아, 물론 미술계에서도 공예적이다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어요."
일상을 파고든 혁신은 유행을 만든다. 이후 조각작품에 아트벤치가 나오는 계기가됐다.
공예적이면서 공예적이지않은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에서 '썸'을 타는 그의 조각은 '교감형, 체험형 순수미술 조각품으로 자리잡았다.
오는 22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여는 개인전에는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더욱 극대화됐다.
7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 신작 '붙이는 석조'을 선보인다. 돌 조각은 원석을 쪼아낸다는 기존의 작업 방식에서 탈피해 돌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들어 간 작품이다. 작가는 특수재질로 모형을 만든 뒤 표면에 돌 조각을 붙이고 그 사이를 시멘트로 메웠다.
작가는 "덩치는 크지만 가벼운 석조, 실내 전시가 가능한 석조를 만들자는 생각에 '붙이는 석조' 작품을 만들었다"며 "석조의 개념을 바꿨다"고 자부했다.
이 '붙이는 석조'는 정감 넘치는 조각처럼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원한다. 커다란 원형 벤치로, 가족이나, 친구가 함께 놀수 있는 대형 식탁으로도 쓰일수 있게 유도한다.
숫자로 형상화한 붙이는 석조는 의미가 있다. “숫자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기호이자 약속이다. 숫자는 그러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 의미를 모르는 이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숫자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으며, 숫자를 초월할수록 인생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다.
3개의 얼굴을 가진 조각, 엉덩이를 드러낸채 볼일 보고 있는 소녀, 안경을 쓰고 피식 웃고 있는 자신의 부인(고종희)까지 선보인 작품은 작가의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성격까지 보여준다. 전시 타이틀은 '행복한 조각'이다.
2층 전시장에는 그동안 작가가 땀흘려온 작업실이 그대로 재현됐다. 작가의 경기도 안성 작업실 공간이다. 그라인더 등 석조에 쓰이는 다양한 공구들의 이미지와 수십여 년간 작업해 온 200점이 모형과 드로잉이 전시됐다. 곁눈질하지 않고 '돌조각가'로 경력의 주름을 늘려온 성실한 작가의 면모를 엿볼수 있다. 전시는 9월 17일까지.(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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