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 "이번 비엔날레는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사운드나 움직임의 실천적 역동성을 추구하면서 현 상태를 불태우는 급진적인 정신을 아우른다"
3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현장에서 국내외 기자들과 만난 제시카 모건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은 "연극적인 요소,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가 펼쳐내는 마치 거대한 현대미술의 집에 방문한 것처럼 보고 느끼고 진지하게 사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건 총감독은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수석 큐레이터다.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전시 타이틀로 38개국의 작가 111명(103개팀)이 참여한 이번 비엔날레는 직설적이고 화끈하다.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형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회화 설치 조각등 총 413점이 전시됐다.
이번 비엔날레는 강렬한 제목으로 그 어느해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창설 20주년을 맞는 2014 광주 비엔날레가 5일 개막한다. '터전을 불태우라'. 이 타이틀이 현대 미술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베일벗은 '터전을 불태우라'
터전을 불태우라. ‘버닝 다운 더 하우스’는 1980년대 미국 밴드 토킹헤즈의 대표곡에서 따왔다.
2014광주비엔날레는 미국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저항 의식을 상징했던 이 노래의 제목을 차용하면서 '쇠락과 갱신을 통한 변혁'을 다룬다.
제도권에 대한 저항과 도전, 창조적 파괴와 새로운 출발 등의 의미를 회화, 설치, 퍼포먼스, 뉴 미디어, 영화, 연극, 음악, 건축 등으로 표현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펼쳐낸다. "예술의 끊임없는 비판과 도전 등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는 게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는게 제시카 모건 총감독의 말이다.
올해에는 주제를 구현하는 대형 신작 39점이 대거 등장하면서 전시장은 마치 '불타는 듯한 거대한 집' 같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야외 광장에 들어서면 스털링 루비의 신작 ‘스토브’에서는 실제로 장작이 타면서 연기를 뿜어낸다. 전시관 벽면에는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식민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문어가 전시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제레미 델러의 ‘무제’로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가로 29.2m x 세로 15.8m 규모 대형 배너 설치 작품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5개 전시실은 화재가 발생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벽지 작품이 설치됐다.엘 울티모 그리토의 신작 ‘미장센’으로 6606㎡(2000평) 규모 대형작이다.
전시관 내부 곳곳에는 실제 집 안에 들어온 듯한 효과를 연출하는 작품들과 불에 탄 잔해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면서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를 더욱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1전시실에 들어서면 잭 골드스타인의 ‘불타는 창문’이 있는데 어두운 방 안의 한 쪽 벽면에 창문을 끼워놓고 그 안에서 붉은색 빛이 깜빡이고 있어 마치 집이 불타는 듯한 광경을 보여준다. 1전시실에서 나갈 때는 구정아 작가의 벽이 흔들리는 듯한 작품인 ‘그것의 영혼’과 만나는데 화재 발생의 위급한 상황을 연출한다.
4전시실에는 벨기에 출신 작가로 테이트모던 등에서 전시를 가졌던 카르슈텐 횔러의 신작 ‘일곱개의 미닫이 문’도 건물 안을 걸어가는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아르헨티나 작가 에두아르도 바수알도도 본인의 집이 화재로 소멸됐던 경험에 근거해 불에 탄 나무로 만든 집 형태의 작품 ‘섬’을 선보인다. 1전시실 코넬리아 파커의 ‘어둠의 심장’도 불에 탄 나무의 잔해로 만든 설치작이다.
▶변방의 약자 시선을 담론의 중심으로
2014광주비엔날레는 여성과 성 소수자 등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계층과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변방의 국가를 담론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한국 페미니즘 미술 선구자인 윤석남은 회화와 설치 등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위한 캠페인을 펼쳤다. 이번에 선보이는 ‘최승희’는 한국의 신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위한 오마주다.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 출신 여성 작가 이불은 1989년 일본의 거리에서 괴물 형상 솜옷을 입고 행했던 퍼포먼스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한다. 이불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퍼포먼스와 오브제 작업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 상품화, 군대 문화 등을 비판하는데 주력해 왔다. 이번 기록 영상도 권력 비판,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저항 등을 보여준다.
성, 젠더,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다뤄온 2014광주비엔날레 포트폴리오 공모전을 통해 참여하게 된 최운형 작가는 파스텔톤으로 남성 성기를 그린 ‘아쿠아리움’ 페인팅 작품을 통해 남성들의 무력함 등을 드러낸다. 최운형 작가는 그동안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성적 차별과 소외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미국에서 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개인적으로 트라우마가 되었던 기억을 기초로 한다.
1970년대 초반부터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작업해온 오스트리아 출신 레나테 베르틀만은 라텍스로 만든 100벌의 옷을 널어놓은 설치물 ‘빨래하는 날’에서 섹슈얼리티 등을 다룬다. 에이에이 브론슨은 올해 야외 사이트인 팔각정 창작 스튜디오에서 성소수자 문화를 다룬 300여권 잡지를 아카이빙해 전시한다.
▶권력·체제·소비사회 등의 저항
1전시실의 에드워드 킨홀즈와 낸시 레딘 킨홀즈는 해적선을 연상케 하는 설치물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The Ozymandias Parade)를 통해 군대와 국가적 권위 형태에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테츠야 이시다는 ‘리콜’ 등의 작품을 통해 소비 중심 사회를 비판하며 현대인의 소외, 고립 등을 포착한다.
중국 출신 류촹은 미디어 작품 ‘무제’에서 글로벌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끝없이 변화하는 중국의 환경에 비판을 가한다. 류촹의 작업은 젊은 노동자에서부터 구직자, 십대, 행인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서 현대 중국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수앙 작가도 레진으로 만든 설치물 ‘소음’을 선보이는데 부동산 투기, 무차별적 도시 개발, 도시 환경 문제 등을 그 만의 극사실주의적 기법을 통해 제시한다. 옥인콜렉티브도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전유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를 노출시킨다.
▶역사적 사건의 기록과 현대적 재해석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예술의 맥락으로 끌어들여 재해석하는 작품들도 대거 선보인다.
2014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인 중국 스타 작가 류 샤오동은 지난 7월 광주에서 머물며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담아내는 레지던시를 진행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던 구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5명의 10대들을 그린 프로젝트는 대규모 회화 작품 ‘시간’(가로 300㎝ x 세로 240㎝)으로 완성돼 전시기간 4전시실에 걸렸다.
홍영인 작가의 퍼포먼스인 ‘5100: ’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이미지에서 발견한 움직임을 재해석했으며, 에이 아라카와와 임인자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전후 광주지역 연극의 변천사에 주목했다. 김영수 사진작가도 1980년대 군부독재정치의 억압 하에 왜곡된 현실을 앵글에 담은 ‘사람-고문’ 연작을 전시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성 작가로 조국의 슬픈 역사와 인권에 대해서 의인화한 동물 모양의 설치 작업을 해온 제인 알렉산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어나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사건들에 영감을 받은 신작 ‘심포지엄’을 선보인다.
파키스탄 출신 후마 물지의 동물 가죽으로 만든 실물 크기 인간 형상 작품인 ‘분실물 취급소’는 정권의 억압 하에서 실종이 흔한 일이 되어버린 파키스탄 사람들을 암시한다.
전위적인 현대미술 축제인 2014광주비엔날레는 5일부터 11월 9일까지 66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광주중외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재)광주비엔날레와 광주광역시가 주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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