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만 해도 기업이 파산하면 채권자들은 파산기업이 보유했던 건물이나 부동산, 생산설비 등을 확보하는데 급급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파산기업이 보유한 브랜드 로열티라 할 수 있는 지적재산권이 1순위로 활용되고 있다. 기업이 파산해도 기업이 보유한 1등 브랜드가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유는 기업이 추구하는 시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장(Market place)의 개념이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시장은 바로 소비자 마음 속(Consumer mind)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관점에서 제품과 브랜드는 크게 다르다.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지만 브랜드는 소비자 마음 속에서 만들어진다. 소비자의 마음속에 굳건하게 형성된 브랜드 포지셔닝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기업에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 관련 마케팅조직의 유형을 살펴보면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브랜드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를 전담하는 조직을 아직까지도 기업내부에 만들지 않은 형태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둘째는 마케팅부문 산하에서 이와 유사한 브랜드관련 업무를 취급하게 하는 경우다. 기업명이 곧 사업의 핵심브랜드인 곳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셋째는 마케팅본부 산하에 브랜드실이나 브랜드관리팀을 신설해 운영하는 곳으로 서비스기업의 브랜드관리에 적합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그만큼 브랜드관리를 실천적으로 잘 하겠다는 의지가 내포된 특별한 경우다. 넷째는 유니레버나 P&G 등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이미 실행하고 있는 BM(Brand manager)시스템을 도입해 정착시킨 사례다. 국내에서는 1985년 애경이 유니레버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면서 최초로 도입했다. 이후 CJ, LG생활건강, 태평양, 해태제과 등의 생활용품기업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BM시스템은 이미 선진기업에서 브랜드경영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검증되고 있다.
과거 마케팅조직에서 브랜드관리가 불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브랜드에 대한 전권을 소유한 명확한 책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말 속에는 기업에 소속된 모든 사람이 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 기존 마케팅조직은 업무 위주로 분권화돼 있기 때문에 홍보팀에서는 홍보업무만을, 영업부서는 판매목표 달성을, 상품기획팀은 신제품개발에만 역량을 집중한다. 브랜드에 대한 일관된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출시된 브랜드에 대한 부서들간의 업무영역도 서로 명확하지 않아 사안에 따라 책임을 회피하거나 공을 서로 차지하려는 갈등이 유발되기도 한다. 카테고리 중심으로 PM(Product manager)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조직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마케팅조직을 별도도 운영하지 않고 관리본부나 영업본부에 귀속시키는 기업도 많다. 이런 조직에서 마케팅은 극히 제한적인 업무만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결국, 판매를 지원하는 영업지원부서로 전락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BM제도란 브랜드 탄생에서부터 소멸까지 브랜드 전반에 대해 BM이 무한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마케팅정책을 펼칠 수 있는 마케팅 프로세스를 말한다. 여기서 BM의 역할은 신규브랜드개발, 기존제품 개선, 광고제작 및 집행, 홍보전략 실행, 프로모션기획 및 실행, 원가·매출·손익관리, 유통정책, 리서치 등이다. 이를 통해 브랜드 자산가치를 올리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브랜드에 살아있는 영혼과 힘을 불어 넣는다는 얘기다. BM제도의 핵심은 각각의 기능별로 분리된 마케팅조직을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는 소사장제도라 할 수 있다. BM의 역량은 종적인 깊이만큼 횡적인 면에서도 거시적인 안목과 다재다능한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이 확보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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