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시에 찔린 상처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시인 릴케의 묘비명은 “장미꽃이여, 오오 순수한 모순이여…”로 시작된다. 시적이고 낭만적이다. 걸레스님으로 유명한 중광은 “에이, 괜히 왔다 간다”다. 살아보니 암 것도 아니었던 걸까? 김수환 추기경은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를 묘지명으로 썼다. 믿음이 있으니 아쉬워할 것 없었을 게다. 일본의 모리야 센얀이란 선승은 “나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 좋으면 술통 바닥이 샐지 모르니까”란 장난스런 묘지명을 썼는데 참선을 많이 한 승려가 남긴 말이라 오묘한 화두일 듯싶다.
나는 죽으면 무슨 말을 남길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가 많다. 좀 더 살아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결국 못 찾고 떠난다”가 적당할 것 같다. 뭔가 찾아 허겁지겁 살았다. 누구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다. 행복하면 곧 ‘웰빙(well-being)’이다. 웰빙을 하면 ‘웰다잉(well-dying)’도 할 수 있다.
요즘 웰다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누구나 죽는다.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나 문화가 예전과는 다르다. 모두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운 것도 아니다. 무조건 슬프지도 않다. 밝고 적극적으로 죽음을 설계하고 맞이하려 한다. 스스로의 행복을 찾고 남겨진 지인이 피해보거나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이것이 웰다잉이다.
웰다잉과 더불어 뜨는 것이 ‘에코다잉(eco-dying)’이다. 수목장처럼 숲이나 공원의 나무, 화초 아래 유골을 뿌리는 친환경적 장례다. 웰빙, 웰다잉의 끝에는 에코리빙, 에코다잉이 있다. 자연에서 살다 자연에 잠드는 친환경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많고 앞으로 관심은 커질 것이다.
김경래 OK시골 대표 / www.oksig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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