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시안게임] 박태환만 바라본 한국수영, 36년 만에 노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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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9-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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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양 박태환[남궁진웅 timied@]


아주경제 박성준 기자 = 결국 금메달은 없었다.

박태환(인천시청)이라는 수영계의 돌연변이만 의지하던 한국이 아시안게임 36년 만에 '노 골드' 현실에 봉착했다.

한국은 26일까지 수영 종목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얻지 못했다. 은메달 2개와 동메달 5개가 수확의 전부다.

이미 세계정상까지 제패한 박태환은 대회 3연패를 노린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동메달, 2연패에 도전한 자유형 100m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박태환 말고도 안방에서 치르는 대회의 이점을 살려 남자 자유형 50m 등 단거리 종목에서 내심 금메달을 기대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경영 마지막 날인 26일 남자 자유형 1500m와 여자 자유형 50m 등 6개 종목을 남겨뒀지만 금메달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마지막 희망인 남자 자유형 1500m조차 세계기록 보유자인 쑨양(중국)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며 노메달로 그쳤다.

박태환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자유형 1,500m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에는 특유의 스피드를 살리려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자유형 200m와 400m에 주력해 왔다.

한국수영은 고(故) 조오련 씨를 비롯해 최윤희 등 걸출한 스타의 힘으로 근근이 금맥을 이어갔다.

그동안 중국과 일본이 양분한 아시안게임 수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한국 선수는 단 8명뿐이다. 이들이 총 21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을 시작으로 1970년 테헤란 대회와 1974년 방콕 대회에서 남자 자유형 400m와 1,500m 금메달을 땄다.

이어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서는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여자 배영 100m와 200m, 개인혼영 200m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최윤희는 1986년 서울 대회에서도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

1990년 베이징 대회와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는 지상준이 남자 배영 200m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히로시마 대회에서는 방승훈도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후 1998년 방콕 대회에서 조희연이 여자 접영 200m 금메달, 2002년 부산 대회에서 김민석이 남자 자유형 50m 금메달을 목에 걸어 금맥을 근근히 이어갔다.

그러던 중 2006년 도하 대회에서 수영 천재 박태환이 나타나 재도약의 발판을 놨다.

당시 경기고 2학년생이었던 박태환은 자유형 200m·400m·1,500m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 단체전까지 뛰며 혼자 7개의 메달(금 3, 은 1, 동 3)을 쓸어담았다.

한국수영은 도하에서 경영에서만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1개를 수확하며 20년 가까이 새로운 황금기를 열었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도 박태환은 자유형 100m·200m·400m에서 우승해 2회 연속 3관왕의 위업을 이루고 전성기를 이어갔다.

또 정다래가 여자 평영 2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수영 단일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4년 흐른 지금, 안방에서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한국수영은 1978년 방콕 대회 이후 36년 만에 경영 종목에 걸린 38개의 금메달 중 단 하나도 가져가지 못할 위기를 맞았다.

수영 천재 박태환을 '방목'에 가까운 허술한 관리가 도마에 올라 대한수영연맹은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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