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전격 방남을 계기로 북한 실세들의 권력 내 위상을 확인할 기회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대표단장' 자격으로 방문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넘버 2'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지난 4월 말 군 총정치국장과 차수에 오른 데 이어 이달 25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 회의에서 총정치국장에 걸맞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선군정치를 표방하는 북한 군부의 최고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4일 인천공항 도착 직후 황 총정치국장이 1호 차의 조수석 뒷자리에 앉았고 최룡해 당비서는 같은 차량의 운전석 뒷자리에 탑승했다. 통상 승용차에서 조수석 뒷자리는 '상석'으로 받아들여진다.
평양에서부터 동행한 검은색 선글라스의 건장한 경호원 2명도 외부 이동 때 황 총정치국장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환담과 오찬 회담, 총리 면담 때도 황 총정치국장은 항상 해당 행사의 남쪽 최고인사 맞은편에 앉았다.
최용해 노동당 비서는 북한에서 김일성 직계인 ‘백두 혈통’ 다음가는 ‘빨치산 혈통’으로 현재 북한 내 권력서열에선 3위권으로 평가되지만 최근 군 직책에서 물러나면서 이보다 더 서열이 떨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2012년 4월 군 총정치국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꿰찬 최 비서는 김정은 체제에서 2인자 자리를 굳히는 듯 보였으나 지난 5월 군 총정치국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 부위원장직에서도 물러났다. 그러나 최 비서는 지난달 장성택의 후임으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임명됐으며 주요 직책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근로단체를 담당하는 당 비서직을 맡고 있다.
최 당비서는 류길재 장관과 환담에 앞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또 최 당비서는 여야 의원과 면담 도중 새정치민주연합의 임수경 의원을 가리키며 "내가 꼭 소개하고 싶다. 예전에 같이 청년위원장 할 때 만났던 인연이 있다"고 좌중에 소개할 정도로 거침없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북한 내 공식 서열은 ‘10위권’으로 평가되지만 ‘김정일의 복심’으로 불렸고 오랫동안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해왔다는 점에서 실질적 서열은 그보다 더 높다는 평가다.
김 비서는 역시 베테랑 실무관료 출신답게 남북관계의 전문성 있는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노련하게 소화했다.
오찬 회담에서는 "이번 기회가 우리 북남 사이 관계를 보다 돈독히 해서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왔다"고 밝히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견은 그의 입을 거쳐 나왔다.
이번 방남에서 김 비서는 자신보다 일곱 살 적은 황 정치국장을 깍듯이 예우했다. 그는 오찬회담에서 황 정치국장 대신 모두발언을 하면서 “우리 총정치국장 동지(의) 승인(을) 받아서 간단히 발언하겠다”고 했다. 또 “우리 총정치국장이 오셨다. 개막식도 아니고 폐막식이지만 우리 총정치국장이 왔다”고 강조해 말하기도 했다.
여야 의원과 면담에 배석했던 한 참석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완전한 2인자로 자리를 굳힌 듯하더라"며 "최룡해 당비서가 내내 '단장님, 단장님' 하며 깍듯이 모셨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도 "황병서가 제일 서열이 높은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4일 대표단의 출발 소식을 전하면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며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조선인민군 차수 황병서 동지가 비행기로 평양을 출발했다"며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인 최룡해 동지, 김양건 동지가 동행했다"고 밝혀 황 총정치국장을 부각했다.
이번 대표단장으로 남측을 방문함으로써 황 총정치국장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대외적으로 확실히 과시한 계기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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