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시를 읽다(23)] 자유와 민주가 숨쉬는 글로벌 자유경제 도시 ‘홍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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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0-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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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이슬 기자]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홍콩 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 열기가 일주일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앞서 8월 3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결정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제도에서 직선제 후보를 친 중국계 인사로 제한한 것이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10만명 안팎의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면서 홍콩 시내 초·중·고교에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고 도심에 위치한 대형 은행이나 상가 점포들은 문을 닫았다.

외신들은 홍콩 경찰이 최루탄을 살포하며 진압에 나서자 시민들이 우산으로 막아낸 것에 빗대 ‘우산혁명’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중국 관영언론은 ‘색깔혁명’이라 규정하며 공산당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간 홍콩에서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2003년)나 국민교육(2012년) 등 중국 당국의 수 차례 홍콩의 중국화 시도에 반발하며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발했었다. 이 같은 배경에는 156년간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은 후 1997년 중국에 공식 반환된 홍콩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어로 ‘샹강(香港)’이라 불리는 홍콩은 향나무 향이 가득한 항구라는 뜻이다. 명나라 때 향나무 중계무역항이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홍콩은 샹강의 광둥식 발음이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기 직전인 1840년만 해도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전한 청나라가 1842년 난징조약에 따라 홍콩 섬을 영국에 넘겨준 것을 시작으로 2차 아편전쟁 패배 후엔 주룽(九龍)반도까지 넘겨주었다. 이후 1898년 영국은 신제(新界) 지역까지 99년간 조차하기로 하면서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까지 156년간 홍콩에선 영국의 식민 통치가 이어졌다.

홍콩은 태생적으로 보유한 원자재 자원이 빈약했다. 영국도 홍콩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여건이 그리 좋지 않음을 발견했다. 당시 몽고메리 마틴 홍콩 재무장관이 영국 정부에 홍콩 섬을 포기해야 한다고 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영국은 자원이 취약한 홍콩을 영국의 물류 집산지로서 자유무역항으로 활용하면서 홍콩 경제를 발전시켜 나갔다.

홍콩 경제는 1941년부터 약 5년간 일본 제국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잠시 피폐해지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전 홍콩의 인구는 160만이었으나, 영국이 식민지 지배권을 회복한 1945년 8월에는 거의 60만으로 줄었을 정도다.

신 중국 설립 후인 1950년대부터는 중국 공산당의 억압을 피해 상하이 자본과 공장들이 홍콩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는 홍콩 제조업 발전 토대가 됐다. 통계에 따르면 1949~1950년 약 10억 홍콩달러가 홍콩으로 유입됐으며, 당시 홍콩에 등록된 상하이 출신 기업 수도 228개 달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홍콩 제조업 수출이 전체 수출의 81%를 차지했을 정도로 홍콩은 단순한 중계무역항에서 점차 제조업 기반 도시로 발전했다. 홍콩은 제조업 성장을 기반으로 70년대부터는 금융·부동산·관광산업도 적극 육성했다. 통계에 따르면 홍콩의 경제는 1961년부터 21년간 연 평균 9.9%로 초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특히 1978년 중국 대륙의 개혁개방 정책 실시와 함께 80년대 홍콩은 중국 대륙에 투자되는 외국 자금의 주요 통로로 대륙 경제 발전의 후광을 입고 빠르게 발전했다. 홍콩과 마주한 광둥성 선전에 경제특구가 설치되면서 홍콩의 제조업은 중국 대륙으로 이전하고 대신 홍콩 금융 서비스업이 빠르게 발전했다.

이 같은 홍콩의 경제적 성공에는 철저한 자유 시장 경제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자유항으로서, 상품과 외환의 유출입이 자유롭고, 기업 경영이 자유롭고 대외 자본과 현지 자본이 동일시되는 곳이다. 홍콩은 연속 17년 동안 월스트리트 저널과 헤리테지재단의 경제적 자유지수에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제로 선정되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홍콩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제'라고 평가했다.

자유경제에 기반한 홍콩은 대만·한국·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작은 네 마리의 용'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아시아 최고 부자 리카싱 청쿵 그룹 회장 같은 부자들도 홍콩에서 줄이어 탄생했다. 이처럼 홍콩이 아시아 부자 도시로 성장하고 있을 때 중국은 홍콩을 다시 영국으로부터 넘겨받기 위한 준비 작업에 서서히 돌입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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