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세월호 특별법의 덫에 막혀 장기간 표류했던 2014년도 국정감사가 초반부터 막말과 정쟁 속에 파행을 탈피하지 못하면서 ‘정치 혐오증’이 확산될 조짐이다.
‘일하는 국회’를 천명한 여야가 국감 초반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면서 정책과 대안 제시는 간데없어지고 난장판 국회만이 남아서다. 여야 간 정쟁이 정치 불감증을 만들고 또다시 극단적인 정치 혐오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글날인 9일 숨 고르기에 들어간 여야는 ‘민생 국감’을 위한 전열을 정비했지만, 남은 국감이 정책과 대안제시의 장으로 탈바꿈할지는 미지수다. 국감 첫째 날과 둘째 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한국 의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서다.
실제 12개 상임위원회에서 동시에 시작된 첫날(7일) 국감에선 초반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 간 기 싸움으로 곳곳에서 파행을 면치 못했다.
환노위 국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은수미 의원 등은 개회 선언 직후 의사진행 발언을 자청, 현대·기아차 등 재벌 총수들의 증인 채택 불발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민주노총 2중대냐”라고 맞받아쳤다. 결국 환노위 국감은 파행됐다.
새누리당 송영근·정미경 의원은 같은 날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군부대 가혹행위에 대해 질의 중인 새정치연합 진성준 의원을 겨냥, “쟤는 뭐든지 삐딱, 저기 애들은 다 그래요”라는 쪽지를 건넸다.
국감 둘째(8일) 날 정무위 국감에선 새정치연합 강기정 의원이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에게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말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한글날인 이날 야권을 향해 “국회의 권위는 호통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회는 경제 살리기에 일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여야 간 정쟁이 향후 민심의 향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세월호 정국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거대 양당(새누리당·새정치연합) 지지율이 고착, 여야의 ‘진흙탕 싸움’에 질린 유권자들이 대거 무당파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여야 정쟁→정치 혐오증 유발→무당파 증가’ 등의 도식이 작용하는 셈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10월 첫째 주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지지정당이 없거나 의견을 유보한 ‘무당파’는 지난주 대비 2% 포인트 상승한 30%로 집계됐다.
이는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20%)보다 10% 포인트 높은 수치다. 새누리당은 44%로 1위를 기록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45% 안팎에 갇힌 것으로 드러났다. 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은 4%와 2%에 각각 그쳤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40%대 후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월 셋째 주 48%를 기록한 박 대통령은 이후 단 한 차례만 50%를 찍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10월 첫째 주 지지율은 49%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야 어느 쪽도 민심으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말·정쟁’ 국감으로 무당파가 급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정책과 정쟁의 갈림길에 선 여야가 이번 국감에서 민생 경제와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여야 모두를 비토하는 세력이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