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경제 홍성환·문지훈 기자 = 지난달 말 현재 은행들의 기술신용대출 실적이 전월대비 대폭 증가하면서 기술금융 지원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매달 은행별 기술금융 지원 실적을 공개하면서 각 은행마다 실적 부풀리기에 나서는 등 부작용도 심화되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 증가로 은행들의 예대율 관리상 계속 기술금융을 확대할 여력이 있는 것인지 의문과 함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13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기술신용평가 기반 대출은 3187건, 1조8334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술신용대출은 7월 486건에서 8월 1024건, 지난달 1677건으로 늘었으며, 특히 은행의 자율적 기술신용대출이 급증해 7월 54건에서 8월 241건, 지난달 802건으로 급증했다. 잔액 역시 9월 한 달간 4906억원 늘어 전월 1780억원 대비 크게 증가했다.
전체 은행 중에서는 기업은행이 대출 건수(1337건)와 잔액(6920억원) 모두 은행 전체 실적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이 425건(2855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하나은행이 333건(2824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하나은행은 은행 자율대출이 157건(1732억원)으로 두드러졌다. 지방은행 중에서는 대구은행이 48건(150억원)을 지원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기술금융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은행별 실적을 공개하자 은행들은 매달 기술금융 '성적표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기술금융 활성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은행별 실적 공개가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며 "자칫 기술금융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실적을 쌓기 위한 편법이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은행들은 기술금융 실적 공개에 부담을 느껴 실적 부풀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술금융 실적을 늘리기 위해 기존 담보대출로도 충분한 기업에 기술신용대출을 강요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과 관련 없는 중소기업이 일반 기업대출을 요청해도 은행이 기술금융 실적을 쌓기 위해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기술신용평가서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 '강매'에 나선다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과연 기술금융 대출까지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은행들은 자산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예금에 대한 대출의 비율인 예대율을 10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예금잔액 이내에서만 대출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은행들이 기술금융 대출을 늘리면서 예대율을 맞추려면 그만큼 주택담보대출을 줄이거나, 새로운 예금을 추가로 유치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이후 주택담보대출이 빠른 속도를 늘고 있는데 반해 예금은 사실상 제자리 걸음인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예금기관의 가계대출이 한달 사이 6조3000억원이나 늘었다. 14개월 만에 최대폭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5조1000억원이나 늘었다. 이 가운데 은행 대출이 5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예대율을 살펴보면 올 상반기 기준 신한은행이 98.2%, 국민은행이 98.5%, 하나은행이 99.0%, 우리은행이 97.9%다. 이에 금융당국은 정책자금을 예대율 산정에서 제외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의 대출 여력은 21조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무한정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면 그만큼 가계대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면서 "정부에서 기술금융 실적으로 줄 세우기를 한다면 각종 편법이 동원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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