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해는 '예약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추사정화전'(秋史精華展)을 하루 500명씩 사전 예약을 받기로 한 탓이다. 매년 매년 봄·가을 전시 때면 전시를 보려고 길게 늘어선 줄로 진풍경은 사라졌지만 전시 관람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마감이 끝났어도 끝예약이 폭주하면서 전화와 이메일은 불통이 됐다. 오는 주말인 19일까지 이미 예약이 다 찬 상태다. 관람문의는 잇따르자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관람 인원을 하루 700∼8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선착순 예약제에 반응은 더 뜨겁다. "왠지 더 보고싶다. 선착순만 볼수 있어 더 가치있는 것 처럼 보인다'등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3월 '간송 소장품'의 첫 외부 나들이를 준비하느라 봄 전시를 건너뛰었던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는 묵향이 가득하다. 19세기 조선말 문화예술계 최고 거장이자 대학자였던 '추사 김정희 글씨'를 선보인다.
■간송미술관 마지막 전시 '추사정화전'
간송미술관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정수만 꼽은" 전시라고 밝혔다.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추사가 36∼70세에 쓴 작품 40여점을 공개한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이번 전시는 추사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라며 "각 나이 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엄선했다"고 밝혔다.
추사가 즐겨 그렸으면서 또한 가장 어렵게 생각했던 난초 그림도 볼수 있다. 추사 난법(蘭法)의 요체를 보여주는 대표작인 '적설만산'(積雪滿山) 등이 소개된다. '적설만산'은 '난맹첩'(蘭盟帖)에 포함된 그림으로, 난을 잔디처럼 짧게 그려 우리나라 중부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춘란의 강인한 기상을 표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전통미술 연구에 평생을 헌신한 최완수 소장이 추사의 사상과 예술을 집약한 ‘추사집’을 38년만에 개정판을 내고 재출간한 것을 기념전이기도 하다.
[ 계산무진'(谿山無盡) 은 추사체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횡액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추사는 중국의 서도사(書道史)를 관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방식으로 평생에 걸쳐 추사체를 완성했다. 이미 6∼7세 때 예술적 천재성을 인정받을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던 추사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추사체'는 사실 그의 말년에 완성됐다.
우선 스승인 청나라 옹방강(翁方綱·1733∼1818)의 서체를 익힌 추사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 명의 동기창·문징명, 원의 조맹부, 송의 황정견·소식, 당의 안진경·우세남·구양순, 동진 왕희지 등을 차례로 익혔다.
심지어 전한(前漢) 시대의 고예(古隸)체가 남은 후한(後漢) 초기 비석 등을 통해 몇자 남지 않은 고예체를 유추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제일 잘 나가던" 30대에는 옹방강의 영향을 받아 서체가 다소 중후한 맛을 보인다면 중국 서도사를 익힌 50대 때의 서체는 "상당히 날카롭고 칼날 같은 느낌"이 있다.
이후 제주도 귀양살이 시절을 겪으며 예술 수련에 매진한 추사는 고예체를 바탕으로 전서와 팔분예서(八分隸書)의 필체를 융합해 '추사체'를 완성하게 된다.
최완수 소장은 "추사는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창조하는 데에 있어 천재"라며 "옛날 것에서 벗어난 것이 없는데도 옛것 그대로인 것도 없는 것이 바로 추사체"라고 말했다.
추사는 68세를 전후한 시기에 남긴 '계산무진'(谿山無盡)에서 높고 넓은 복잡한 글자(谿)와 낮고 단순한 글자(山), 가로획과 점이 중첩하는 높고 넓은 글자 2개(無·盡)를 가로·세로로 연결해 배치하는 뛰어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추사체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횡액의 대표작이다.
최 소장은 "추사체는 역대 서체의 응집이자 완결된 서체"라며 "이론에 입각해 예술성을 발휘한 서체로, 추사가 아니고는 결코 써낼 수 없는 서체"라고 평했다. 전시는 26일까지. 1시간 관람예약제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에 입장이 가능하다. 070-7774-2523, 070-4217-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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