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민중기)가 16일 2014 수능 세계지리 과목 8번 문제에 대해 오류가 있다고 판단하고 수험생들이 제기한 ‘세계지리 과목에 대한 등급 결정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수능 문제 오류가 법원 판결에 의해 인정된 것은 1994학년도 수능부터 2014학년도 수능까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에도 수능 문제에 대해 정답 논란이 있어 평가원의 추후 판단에 의해 복수정답이 인정된 경우(2004학년도 수능 언어 영역 17번 복수 정답, 2008학년도 수능 물리II 11번 복수 정답, 2010학년도 수능 지구과학I 19번 복수정답 등)가 있었지만 이번과 같이 평가원이 인정하지 않은 문제 오류(1심 판결에서도 문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음)에 대해 상급심인 고법 판결에 의해 뒤집힌 적은 없었다.
문제 및 정답 이의 신청에 대한 절차에서도 이번과 같이 관련 학회 등에 의한 자문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아 법원 판결에 의해 문제 오류 및 정답 번복 등이 이뤄지는 경우에 대한 평가원 및 대학 당국의 피해 구제 방식 등도 구체적으로 논의돼 수험생 및 학부모들에게도 공지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문제는 2014 수능 사회탐구 영역 세계지리 8번 문항으로 평가원의 해명 자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사실에 대한 통계 근거가 부족하다고 해 당시 이의 자료를 제기해 논란이 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 문항이 지리적 현상의 패턴과 경향을 묻는 세계 지리 교과목의 특성상 고교 수준에서 지리적 특성에 따른 경제협력체(EU와 NAFTA)의 전반적 특징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 것으로 특정 연도의 통계치를 묻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었다. 매년 변화되는 새로운 통계치를 알고 있는지를 물을 경우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과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항은 세계 지리 교과서 2종(교학사, 천재교육)과 EBS 교재에 근거해 출제한 것으로, 해당 교과서에서는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이 크다는 내용이 제시돼 있다고 설명했었다.
총생산액의 경제 블록 간 비교를 위해서는 수년간의 추이를 바탕으로 한 학술적 논의의 결과가 세계지리 교육과정에 반영되는 것으로, EU와 NAFTA의 총생산액은 2007∼2011년 EU가 높았던 시기가 길었고 2012년 확정치는 미발표된 국제기구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문항의 회원국 분포도 하단에 표기된 ‘(2012)’라는 수치의 의미는 ‘지도는 지역 경제 협력체 A, B의 회원국을 나타낸 것이다’라는 문두의 표현처럼 2012년의 회원국 현황을 나타낸 것으로, 2013년 이후의 신규 가입국(크로아티아 등)의 일시적 변동은 고려하지 말라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2014학년도 수능 세계 지리 과목의 총 응시자 수는 3만7684명으로 8번 문항에 대한 이의 신청자는 3명, 6건으로 2명은 이의를 제기했고 1명은 문제없다는 의견이었다.
평가원이 문항과 관련한 이의신청을 심의하기 위한 이의심사 실무위원회를 개최한 결과 ‘정답에 이상 없음’으로 판정했다.
이 문항에 대한 외부 전문집단의 유권해석을 위해 한국경제지리학회와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에 자문을 요청한 결과 두 학회 모두 ‘정답에 이상 없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는 “학생들에게 선지식을 요하는 문항인 경우 문항의 오류 여부 및 정오답을 판단하는 근거는 학문적 논의를 거쳐 교육과정의 범주에 안착된 교과서 내용만이 유일한 근거”라며 “만약 교과서 근거를 무시하고 그와 배치되는 입장에서 이 문항의 정오답을 판단한다면 학교 현장에서 무엇을 근거로 학습해야 하는가를 놓고 교육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됨”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대법원 판례(2010두17267, 2011.7.14.)에도 문항의 <보기>에서 ㄱ은 맞는 내용이고 ㄴ, ㄹ이 명백히 틀린 내용으로 ㄴ, ㄹ을 포함하는 ①, ③, ④, ⑤는 정답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고 수험생은 ㄷ이 논란이 된다 하더라도 정답으로 ㄱ과 ㄷ이 포함된 ②번 답항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고 평가원은 근거를 들었었다.
평가원은 이 문항의 난이도는 0.50, 변별도는 0.45로 변별도가 높은 문항이었고 1~9등급별 정답률은 100, 91, 80, 64, 47, 29, 18, 12, 7%로 교과서와 EBS 교재를 충실히 공부한 학생의 경우 정답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는 문항이라고 밝혔었다.
반면 이의 자료에서는 2012년 세계은행 통계에서 2012년 EU의 총생산액 16조6335억 달러가 NAFTA 회원국의 18조6841억 달러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총생산액 연평균치가 EU 16조9870억 달러, NAFTA 회원국 17조1770억 달러로 NAFTA가 높았고 2010년 EU 16조1742억 달러, NAFTA 17조 315억 달러(통계청 자료) 등 최근 추세로 유럽의 재정위기가 시작된 2010년부터 3년간 NAFTA가 EU의 총생산액을 추월하고 격차도 커졌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문제의 정답을 접근할 때 ㄱ)이 NAFTA(미국, 캐나다 등)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떨어지는 멕시코에 대한 활용으로 외국 자본 투자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옳고 ㄴ)이 EU는 역외 공동 관세부과까지, NAFTA는 역내 관세 철폐 정도이 틀린 가운데 ㄹ) EU는 역내 교역비중이 70%를 웃돌 정도로 높고 NAFTA는 역내 교역비중이 40%를 웃도는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틀렸다 해도 ㄷ)의 사실은 엄연하게 틀린 것으로 문제 오류를 인정해 모두 정답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홍근 의원은 이 판결이 확정되면 불합격한 수험생들의 대규모 소송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서울고법이 수험생들의 억울함을 인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지난해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에 입시결과가 나오기 전에 구제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는데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수험생들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실은 문제가 된 세계지리 8번 문항은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의 총생산액을 비교하면서 세계지도에 ‘2012년’이라고 연도를 표시해서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준 데서 비롯됐다며 출제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은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교과서 기준’에 따라 2007~2011년 사이 두 지역의 평균 총생산액 규모를 근거로 제시한 것이라는 면피성 해명자료를 내놓고는 아무런 구제조치를 취하지 않아 오늘까지의 소송전을 초래했고 교과서에는 분명히 ‘2009년 통계’라는 기준을 밝히고 있었지만 수능시험 문제에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평균 총생산액이라는 말이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수험생들이 문항 속의 2012라는 숫자를 보면 당연히 2012년 상황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 평가원의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실은 우리나라 최대의 국가 주관시험이자 일생일대의 진로를 결정하는 수능시험의 잘못된 문제에 대해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완벽한 피해구제를 할 수는 없더라도 사과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상에 당장 나서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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