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기업들이 내년 섀도보팅 제도 폐지에 따라 주총 개최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는 최근 3년간(2012~2014년) 주주총회에서 섀도보팅 제도를 이용한 상장회사 302개사(유가증권 110개사, 코스닥 192개사)를 대상으로 ‘섀도보팅 제도 폐지에 따른 기업의 대응과 과제’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2.4%가 ‘섀도보팅 제도 폐지로 크게 부담된다’고 답했다고 26일 밝혔다. ‘제도 폐지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시기상조’라는 응답도 35.4%로 나타났다.
섀도보팅 제도는 한국예탁결제원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의결권을 대리행사하는 제도다. 주식을 발행한 회사의 요청이 있을 때 주총에 참석한 주주들의 찬반투표 비율에 따라 중립적인 방법으로 의결 정족수를 채워 정족수 미달로 주총 결의 성립이 무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해왔다. 1991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나 상장기업 주총의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오는 2015년 1월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대한상의는 “올 3월 열린 2013년도 결산 정기주총에서 섀도보팅을 요청한 상장사가 전체 상장사의 40%에 달하는 672개사에 이를 만큼 그간 제도의 활용빈도가 높았다”며 “제도 폐지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의결정족수 확보를 위해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의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도 폐지 시 응답기업들은 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에 많은 곤란을 겪을 것으로 우려했다. 응답기업의 91.1%가 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안 결의에 ‘어려울 것’(매우 어렵다’ 62.6%, ‘어렵다’ 28.5%)이라 답했고, ‘어렵지 않을 것’이란 답변은 8.9%(‘어렵지 않다’ 7.3%, ‘전혀 어렵지 않다’ 1.6%)에 그쳤다.
정관 변경 등 특별결의 사항의 결의(출석의결권의 3분의2 이상 및 발행주식 총 수의 3분의1 이상 찬성)에 대해서는 ‘어려울 것’(56.3%)이라는 응답(‘매우 어렵다’ 20.9%, ‘어렵다’ 35.4%)이 ‘어렵지 않을 것’(43.7%)이라는 답변(‘어렵지 않다’ 36.1%, ‘전혀 어렵지 않다’ 7.6%)을 웃돌았다.
배당 결정 등 보통결의 사항의 결의(출석의결권의 2분의1 이상 및 발행주식 총 수의 4분의1 이상 찬성)는 ‘어렵지 않을 것’(76.8%)이라는 기업(‘어렵지 않다’ 63.2%, ‘전혀 어렵지 않다’ 13.6%)이 ‘어려울 것’(23.2%)이라는 기업(‘매우 어렵다’ 4.7%, ‘어렵다’ 18.5%)보다 많았다.
기업들은 섀도보팅 폐지로 인해 가장 크게 우려되는 상황으로 ‘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 불발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67.6%)을 들었다. 이어 ‘주총 결의 성립의 무산’(14.2%), ‘기업의 주총참여 권유업무 과중 우려’(11.9%), ‘총회꾼 등 참석을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악성주주 등장’(5.6%) 순으로 응답했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1년 뒤에도 감사·감사위원 선임에 실패하게 되면 상장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제도 폐지가 2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폐지에 따른 기업의 대응현황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기업 4곳 중 3곳이 ‘대응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74.8%)고 답했고, ‘대응계획을 수립 중’인 기업은 23.8%인 것으로 나왔다. ‘이미 대응계획을 수립했다’는 기업은 1.4%에 그쳤다.
대응계획을 이미 수립했거나 현재 수립 중인 기업을 대상으로 제도 폐지에 대한 대응방법을 묻는 설문에 대해 ‘의결권 대리행사 위임장 확보’(48.7%)라고 응답한 기업이 가장 많았고, 이어 ‘주요대주주에 대해 의결권 적극 행사요청’(18.4%), ‘서면투표 및 전자투표 적극 활용’(17.1%) ‘소액주주들에 대한 주총 홍보 및 참여 독려강화’(10.5%) 순으로 조사됐다.
한편, 제도 폐지에 대한 보완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전자투표제에 대해 기업은 큰 기대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투표제 도입 여부에 대해 ‘당분간 도입계획이 없다’(83.1%)는 응답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내년 주총 전까지 도입할 계획’인 기업은 15.9%로 나타났으며, ‘이미 도입’한 기업은 1.0%에 불과했다.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계획이 없는 이유로는 ‘비용부담 대비 실효성 의문’(58.2%), ‘충분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악의적 루머 확산 방어 어려움’(16.7%), ‘제도 폐지 후에도 당장은 의결권 확보에 문제없음’(12.7%), ‘보안 리스크 부담’(6.8%) 등을 꼽았다.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3.2%)는 답변도 있었다.
섀도보팅 제도 폐지가 전체 상장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는 대다수 기업이 ‘신규상장 기피 및 상장유지부담 증가로 전체 상장시장의 침체가 우려된다’(82.8%)고 답했다. ‘주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건전한 기업들의 증가로 시장활성화가 기대된다’는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답변은 14.6%였다.
응답기업들은 제도 폐지에 따른 기업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 정책과제로 ‘주총 의결정족수 기준 완화’(57.3%),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 불발에 따른 패널티(관리종목 지정 등) 일정기간 유예’(19.9%), ‘의안별 의결권대리행사 권유제도 도입’(10.9%), ‘전자투표 도입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5.6%), ‘전자위임장제도 도입’(2.0%) 등을 제시했다.
특히 기업들은 주총 의결정족수 기준 완화와 관련해서 발행주식총수 기준을 삭제하고 출석주식 수만을 기준으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독일, 일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결의 성립 요건을 출석의결권 기준으로 하고 있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섀도보팅 제도 폐지의 시기에 맞춰 주주총회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주주총회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주주들이 자신의 권리에 관심을 갖고 의결권 행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당국도 주총 의결정족수 기준 완화,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 불발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 유예 등 주총을 준비하는 기업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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