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가 ‘나의 독재자’에서 맡은 역할은 작은 극단에서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배우를 꿈꾸는 김성근이다. 성근은 ‘언젠가 무대에 서리라’ 다짐하면서 연극 포스터를 붙이는 꿈꾸는 청년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다.
어느날 연극 ‘리어왕’에서 연출자와 마찰을 빚던 배우 한명이 이탈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성근은 아들 태식(박해일)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자 열심히 연습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무대를 망치게 된다.
극단 학전 출신인 설경구를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연극 이야기가 이어졌다. 혹시나 성근과 같은 실수를 한 적은 없는지 묻자 설경구는 “큰 실수를 한 적은 없다”면서 “얼마나 많은 선배님들이 무명으로 살다가 가셨겠느냐. 제 생각에는 모두 좋아서 연기를 하셨을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설경구는 “이 길(배우)만 계속 쫓다보면 다른 일을 하기란 어렵다. 마약과 같은 게 배우의 길”이라며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싶어하지만 모두 화려하게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쫓게 되는 게 배우고 동경하는 게 바로 배우”라고 강조했다.
성근은 1972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리허설을 위해 대통령의 상대 역을 맡았다. 바로 김일성. 성근은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온갖 고문을 이겨냈다. 고문을 이겨낸 뒤에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배우며 김일성 역에 몰입한다. 설경구의 대표작 ‘박하사탕’과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박하사탕’에서 설경구는 ‘빨갱이’ 잡는 형사로 출연했다.
“‘박하사탕’ 때는 가해자이면서 희생자였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역할”일라는 설경구는 “고문을 당하는 부분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반 강제적으로 배역이 시작됐고 학습과 세뇌에 빠져든 김성근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의 길과 아들과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아버지를 연기했다”고 회상했다.
“참 이번 작품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았죠. 사실 아버지랑은 친하지 않거든요(웃음). 제 또래 사람들에게 아버지란 거리감과 단절감을 느끼게 하는 편이죠. 그렇다고 아버지가 잘못한 것도 없어요. 그 당시 아버지들은 ‘자신’을 잃고 사셨던 분들인데…. 자식들에게 잡아 먹히면서도 가정을 지키신 분들이죠. 독재자가 아니에요.”
“요즘 아버지들은 다른 쪽으로 불쌍하죠. 매일 아닌 척, 괜찮은 척을 해야하잖아요. 제 또래 사람들은 대게 빨리 크고 싶어했어요. ‘나의 독재자’는 그 시대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어요.”
설경구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그 시절 아버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설경구에게 차기작에 대해 물었다.
“요새 해보지 않은 사극을 하고 싶다”는 그는 “나이 먹기 전에 사극을 해봐야할 것 같다. 그런데 작품이라는 게 인연이 있는 거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분명 관객들은 설경구의 ‘독재자’ 연기에 만족할 것이다. 15세 관람가로 오는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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