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금융권에 따르면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21년만에 불법적인 차명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차명거래금지법이 다음달 말부터 본격 시행됨에 따라 고액 자산가들과 금융사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법안 시행에 따라 은행권에 차명으로 숨겨진 고액 자산가들의 자금이 얼마나 양성화될 것인지 관심사다. 그만큼 절세 전략에 대한 고액 자산가들의 고민과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도 이와 관련한 문의가 대폭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험업계를 비롯한 다른 금융업권 입장에서는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이 고액 자산가들을 유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세원 노출을 꺼리는 자산가들의 특성상 상당규모의 자금이 법망을 피해 현금 형태로 더욱 지하로 숨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김희규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이 고액 계좌의 자금 이탈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액 자산가들은 합법적인 방법을 통한 절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명계좌에 해당 사항이 있는 금융거래자인 경우 법 시행 이전에 명의 전환을 하고 절세상품에 가입해야 한다"며 "배우자나 자녀에게 합법적인 증여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동일 국민은행 대치PB센터 팀장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많은 자산가들이 차명계좌를 정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아직 정리를 못한 자산가들은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에 대해 걱정하고 있고, 증여를 고민하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자금 이동 조짐은 이미 2년 전부터 고액 정기예금의 계좌수와 잔액이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는 데에서 쉽게 드러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정기예금 계좌는 2009년 2만8000좌, 2010년 3만5000좌, 2011년 3만9000좌로 증가했지만, 2012년과 2013년에는 각각 3만8000좌와 3만6000좌로 감소했다.
10억원 초과 정기계좌 역시 2011년 4만좌였지만 지난해 3만7000좌로 줄었다. 5억원 초과 정기예금의 잔액 역시 2011년 318조원에서 지난해 302조원으로 크게 줄었다.
한 시중은행의 PB는 "차명계좌를 정리하는 자산가들이 갈수록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은행권에서 뭉칫돈이 빠져 나갈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부동산을 비롯한 다른 재테크 수단에 돈이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업계의 절세 금융상품이나 금 투자 등에 대한 자산가들의 관심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라며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이 금융권 자금이동을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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