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정부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농축수산물 수입가격지수는 98.1로 전월과 비교해 3.5%포인트 하락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서는 농산물·수산물 하락 등으로 인해 9.5%포인트 낮아졌다. 가공제품을 비롯한 부문별 수입가격이 대체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세의 영향으로 생산자물가지수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100 기준)가 105.24로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0.4% 포인트 하락, 105.12를 기록하던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하지만 서민들의 먹을거리 가격은 오르고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올 1월부터 7월까지 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을 보면 지난해와 비교해 평균 3.2%가 증가했다. 동일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1.1%보다 2배를 훨씬 넘는 수준이다.
특히 가공식품의 주원료인 옥수수 등 곡물 수입가격은 하락세인데 과자 값은 이미 고공 행진을 펼치다 못해 허풍쟁이 ‘과자 포장’이라는 눈총까지 받고 있다. 덩달아 ‘금(金)겹살 쇼크’에 이어 돼지고기를 원료로 하는 육가공식품도 들썩일 조짐이다. 육가공제품의 인상은 향후 2차 가공식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커피 재료인 커피콩(생두)과 원두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수입량도 사상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커피 값은 밥 한 끼보다 비싼 가격이 됐다.
서민들의 체감 물가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정부는 저물가를 빌미로 내년 공공요금 줄인상 등 올릴 수 있는 건 다 올린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그간 정부가 언급해오던 물가안정화 정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물가 끌어올리기에만 열중한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힘든 실정이다. 정부는 실질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결합된 경상성장률 6%를 회복세로 맞추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장기간 물가안정 목표를 하회하고 있는 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로 7개월 만에 바닥을 쳤다. 심지어 올해 2분기 이후 2%대 초중반 수준을 기록하면서 선방하던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지난달에 1.9%로 하락했다.
정부로서는 디플레이션(경기가 가라앉으면서 물가도 떨어지는 경제현상) 공포를 우려하고 있다. 경기하강과 물가하락이 동시에 장기화될 경우 대규모 양적 완화에 나선 일본처럼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물가상승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적인 물가 관리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움츠렸던 식품업계가 스멀스멀 고개를 든 데다 독과점 폐해가 물가 상승을 가져왔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미국이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항공료가 가파르게 오른 현상을 예로 들고 있다. 10년전까지만 해도 적자 등 파산 위기까지 갔던 미국 항공사들은 ‘4강 체제’로 재편되면서 호황을 누리는 ‘항공사 독과점 폐해’의 구조적 문제를 보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만우 의원(새누리당)은 지난 국정감사를 통해 “가공식품 물가가 소비자물가보다 2∼3배나 더 뛰었는데도 정부는 2012년 이후 단 한 차례도 관련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면서 “식품업계의 독과점 경쟁구조 등 유통과정에서 부당한 가격 인상 요인이 없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서민들의 체감 물가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물가 안정화를 외치던 정부 정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장의 파수꾼인 공정위도 직접적인 물가에는 손댈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독과점 등 복잡한 유통구조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부당한 가격 인상은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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