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규혁 기자 =#2011년 천적(天敵)을 이용한 친환경 해충방제 기술과 친환경 농업공법 등으로 한국거래소가 선정한 '히든챔피언'에 등극했던 세실이 상장폐지됐다.
2007년 코스닥 상장 이후 승승장구하며 2009년 히든챔피언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쥔지 불과 2년만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보다 앞선 2010년에는 또 다른 히든챔피언이었던 네오세미테크가 상장폐지되며 충격을 안겼다. 2년 연속으로 비슷한 사태가 재발되자 당시 증권가는 물론 중소·중견기업계와 언론은 확실한 기준과 지향점이 부족한 히든챔피언 제도의 맹점을 꼬집었다.
그리고 불과 3년 후인 올해, '빌 게이츠가 극찬한', '매출 1조 기업'으로 불리던 모뉴엘이 또 다시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30일 정부는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 대책'을 발표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을 집중 발굴,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오는 2017년까지 100개의 한국형 히든챔피언 발굴을 자신했다.
고무적인 것은, 독일 경제학자 헤르만 지몬이 제시한 히든챔피언의 기준 중 모호하거나 국내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던 부분을 과감히 정리하고 독자적인 정의를 내렸다는 데 있다.
새로운 '한국형 히든챔피언'은 세계시장 점유율이 1~3위 이내이며, 3년 평균 매출이 1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또 이 기간 매출액 대비 R&D와 수출 비중이 각각 2%와 20% 이상이어야 하며,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업종 평균 이상이 요구된다. 독자 노선을 걸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국내 특정 대기업 납품비중은 50% 미만으로 제한했다.
그간 히든챔피언 선정과 기준에서 미흡하다고 지적돼 온 △세계시장 지배력 △인재육성 친화도 △독자적 성장기반 등에 대한 검토와 보완도 이뤄졌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으로 나눠져 있던 사업들을 통합해 정책 효과성을 높이고, '글로벌 강소기업'과 '글로벌 전문기업' 등 각 기업별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당초 고려했던 히든챔피언의 기준이 전체적으로 '다운그레이드' 됐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정부는 운용기관별로 제각각인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 방안 선정기준을 일원화 하기로 합의하면서 △기술은 매출액 대비 R&D(연구·개발) 투자 비중 4%, 6% 이상 △수출은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 30%, 50% 이상 △대기업 독립성은 대기업 납품 비중 30%~50% 이하를 제시했지만, 거의 모든 수치가 하향됐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최일선에서 국내 산업의 허리 역할을 수행할 목표치라고 하기엔 히든챔피언 100개 육성이란 목표는 소박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현재 한국형 히든챔피언 기업의 수를 63개사로 파악했다. 1/3 수준의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규모를 감안했을 때 1300개가 넘는 히든챔피언을 보유한 독일과의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2012년 기준 각각 366개와 220개인 미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그 수가 현저히 적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자연히 향후 3년 간 40여개 남짓의 히든챔피언을 육성하는 것만으로 모멘텀 마련이 가능하겠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및 수출 비중도 더 높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중견기업이 힘겹게 사업을 꾸려나가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히든챔피언이라고 명함을 내밀려면 R&D는 물론 수출 비중이 더 확대돼야 한다. 그래야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자적인 경쟁력을 구축을 위해 특정 대기업의 납품 비중을 더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임 교수는 "상당수 히든챔피언들이 점유율 1~3위를 하는 것은 납품하는 해당 대기업들이 시장에서 그만큼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히든챔피언들 스스로 면피의 소지를 부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라며 "이들 기업이 처음부터 시장과 고객 다변화를 염두해 두고 커 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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