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빈 옷걸이들. 벗어놓은 신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사물들. 상당히 시니컬하고 자세히 보면 우울하기 그지없다.
사진평론가 신수진씨는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작품은 슬프고도 아름답다"며 "시간을 박제한 것같은 작품은 대상을 관조하며 죽음의 대상에 생명을 준것"이라고 설명했다.
제5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주목할 작가'로 선정된 사진작가 정경자의 '우연의 뿌리'전이 서소문동 일우 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다. 고독감 우울감 상실감이 짙게 베어있다.
파르라니 깎은 옆모습. 작가는 친구라고 했다. 암에 걸린 친구를 보며 마음과 나눴다.
눈이 된 카메라는 그가 봤을 천장구석 모퉁이, 빼꼼 열린 방문에 시간을 가뒀다. 벽에 붙은 콘센트는 창자같은 전깃줄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낸채 구멍을 보이고 있다.
'죽음에 대한 경험을 했다'는 작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한줄의 싯구 처럼 담아냈다.
'그날따라 이상한 예감에 시달렸다' .'모든 것은 그대로 있다'. 영상으로 만든 사진에 달린 문장들. 다큐프로그램에서 따온 말이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작가는 "수없이 돌아다니며 우연히 만나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며 "(작품은) 소소한 삶에서 느끼는 존재의 흔적"이라고 했다.
전통적이면서 고생스러운 작업은 발췌된 추상화로 변신했다. 거리에서, 집안에서, 자연에서, 도시에서, 인물속에서 혹은 사물들 속에서 사진을 찍는다. 연출한 장면이 아닌, 스트레이트 기법에 충실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영국 유학시절인 2010년부터 작업한 작품 50여점을 선보인다. 우연과 필연, 삶과 죽음, 시간의 흐름과 소멸과 주변의 소소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압축되어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감각을 사물로 얘기하는 '스토리 위드인 어 스토리'(Story within a Story), 삶과 죽음의 경험에 대한 고백을 담은 '스피킹 오브 나우'(Speaking of Now), 폐허의 사물을 통해 생성·성장·소멸을 반복하는 순환의 고리를 담은 '랭귀지 오브 타임'(Language of Time) 시리즈 등을 선보인다.
생명의 온기도 없이 차가운 느낌.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현대인의 삶이란 어쩔수 없이 부딪히는 우울앞에서 비상하지 못한다. 정경자의 작품은 볼수록 슬픔의 끝으로 한없이 기어가게 한다. 전시는 12월 24일까지.(02)753-6502.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