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레드카펫', 10년차 에로 영화 감독이 만든 어른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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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1-0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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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레드카펫' 스틸컷]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극장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네 영화는 안틀어 주냐?”
-영화 ‘레드카펫’ 중-

하루에 영화 한편을 찍어내지만, 그가 연출한 300여 편의 영화 중 극장에 걸린 것은 단 한편도 없다. ‘에로 영화계의 거장’ 정우(윤계상)의 이야기다. 정우는 생계를 위해 에로영화를 찍으면서도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상업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녹록지 않은 현실은 정우를 쉬지 않고 괴롭힌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4대 보험은 된다”고 자위하면 “형 꿈이 4대 보험이었냐”며 애써 덮은 상처를 들쑤시는 조연출과 사탕발림으로 자신을 속이는 영화사 대표, 정우의 시나리오를 도용해 스타 감독이 된 친구 녀석까지…정우에게는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는 부모의 관심도 옥쇄다.

“정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 영화 찍기에 성공했답니다”라는 이 어른 동화가 가슴 깊이 박히는 이유는 ‘레드카펫’이 박범수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레드카펫’으로 입봉하기 전 ‘해준대’ ‘나도 아내가 입었으면 좋겠다’ ‘아이덴찌찌’ 등 10년 동안 270여편의 에로 영화를 찍은 중고 신인이다.

그럼에도 ‘레드카펫’을 10년 차 에로감독의 다사다난한 상업영화 입봉기라고 국한 시킬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좌절하던 시기가, 그럼에도 굽혀지지 않는 꿈이, “엄마는 꿈도 없냐”고 윽박지르면 “내 꿈은 너”라고 보듬어주는 부모가, 이따금 일어나는 사랑의 기적이 박범수 감독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저마다의 ‘레드카펫’을 찾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사진=영화 '레드카펫' 스틸컷]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것이 뜨겁게 차오를 때마다 오정세 조달환 황찬성의 코믹 연기가 분위기를 유쾌하게 환기한다. 오정세와 조달한의 연기는 ‘역시’라는 감탄사를 뱉게 하고, 황찬성의 연기도 첫 스크린 데뷔를 감안했을 때 호연이라 할 만하다.

첫 상업 영화를 상영하고 벅찬 감격에 빠진 정수의 모습에 눈물이 나는 걸 보면 정수라는 이름으로 박범수 감독의 분신이 된 윤계상은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낸 셈이다.

박범수 감독이 들려주는 에로 영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도 놓칠 수 없는 재미다. ‘4‧4‧2’ ‘4‧3‧3’ 촬영법부터 에로배우의 가명 정하기, 남편이 에로 배우인 줄 모르는 아내의 영상통화 대처하기 등 현장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 담았다.

영화의 매무새가 이따금 거칠고 헐겁지만, 그것조차 10년 동안 꿈꿔왔던 입봉작에 대한 박 감독의 고민의 결과로 느껴져 정이 간다. 투박한 그릇에 소담스럽게 담긴 뜨끈한 국밥 한 사발이 잘 차려진 일류 요리사의 요리보다 정겨운 법이다. 10년을 우려냈으니 그 정성이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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