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중 정당교류-1] 물꼬 트인 양국 정당, 동북아 질서 새판짜기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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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1-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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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 정당 채널, 수교 22년 만에 본격화

박근혜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신화사]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올해로 수교 22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가 그간의 전략적 관계를 넘어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한 결과, 이제는 국가 간 교류만이 아닌 정당 간 대화채널을 마련했다. 양국의 관계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 질서를 위한 제1 조건이 된 셈이다. 지난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과 일본의 집단자위권 추구 등으로 동북아 질서가 요동친 상황에서 한·중 양국의 정당 교류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에 아주경제는 총 3회 기획시리즈를 통해 일극 체제를 넘어 다자주의적 시스템 안에서 양국 정당이 교류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지난달 방중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과 공산당의 첫 정당정책대회에 참석하면서 한·중 정당교류 시대의 물꼬가 트였다. 1992년 한·중 양국이 수교한 지 22년 만에 양국 정당의 대화 채널을 본격 가동한 것이다.

특히 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순방길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다섯 번째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어서 양국은 물론 한·중 정당이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전망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3년 6월23일 ‘호혜평등’ 원칙하에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내용을 담은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했지만, 우리에게 중국은 그저 ‘먼 나라’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중국과의 관계는 전면적 협력 관계로 격상됐다. 대한민국의 부녀가 대통령을 한 차례씩 하는 사이, 우리의 대(對) 중국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이다. 한때 북한과 동일시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불가분 관계’로 전환된 셈이다. 

◆한중 교류, 비정치적인 분야→정치로 확대…이제는 정당교류

양국의 교류는 체육 등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시작됐다. 중국이 대한민국의 스포츠 글로벌 시대를 연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25개국 4835명 참가)과 1988년 서울 올림픽(159개국8465명 참가)에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면서 양국 관계는 중대 분수령을 맞았다.
 

[사진(그래픽)=아주경제 편집부 ]


북경 아시안게임(37개국 4755명 참가) 직후인 1990년 10월 21일, 양국은 서울과 북경(北京)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한다. 당시 이 합의로 양국의 민간무역과 경제협조 교류의 물꼬가 트이게 된다.

2년 뒤인 1992년 8월24일 양국은 공식적인 수교를 맺고 한·중 관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같은 해 9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방중을 시작으로, 1994년 3월 김영삼 대통령, 95년 5월 이홍구 국무총리, 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 등이 잇따라 중국 길에 오르면서 한·중의 미래비전 논의는 새 국면을 맞았다.

정치의 교류는 경제적 효과로 나타났다. 1992년 당시 64억 달러에 불과한 한·중 간 무역 총액은 2013년 2700억 달러로 약 43배 증가했다. 인적 교류도 연간 1000만명에 달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날 때마다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7월 시진핑 방한→10월 김무성 방중…‘반부패’ 동맹 형성

박근혜 정부 들어 양국의 교류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2년간 네 번의 한·중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지난 7월 3일 시 주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10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이재오 의원 등은 중국의 정강정책대회에 참석했다.
 

국회 본청 [사진=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김 대표 등은 방중 기간 중 중국 공산당 정강정책대회에 참석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양측이 정당교류의 신호탄인 정강정책대회의 주제로 ‘반(反)부패’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방중 직전인 지난달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시 주석 취임 이후 중국에서 강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반부패 운동과 새누리당의 혁신이 그 맥을 같이한다”고까지 말했다. 사실상 한·중 반부패 연대 추진 의지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중국에서 반부패는 관피아(관료+마피아) 타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저우융캉의 부패 혐의 파문에서 보듯이 중국에서 반부패는 중간관리자가 아닌 ‘최고권력층’의 스캔들 근절, 즉 일종의 정풍운동적 성격을 갖는다는 얘기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대한민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174개국 가운데 46위였다. 55점을 받은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68.6점)을 한참 밑돌았다. 중국도 80위(40점)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 시절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 도입으로 반부패 척결에 본격적으로 나선 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 정치는 부패와 반칙·특권에 얽매여있다는 지적이다.

한·중 정당교류가 시 주석의 ‘정풍운동’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인 ‘적폐 척결’의 시금석이될 것이란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G2로 자리매김한 중국과 경제 10대국의 대한민국이 반부패를 고리로 동맹을 결성해 한 단계 도약할 경우 동북아질서의 새 판짜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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