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양성모 기자 =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일본의 엔저 현상이 연일 지속되면서 글로벌 경쟁력이 뒷걸음질 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초 최경환 경제부총리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책자금을 26조원에서 31조원으로 5조원을 증액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엔저현상이 단순 이슈가 아닌 묵과할 수 없는 범 정부차원의 해결과제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엔저 현상은 오랜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정부가 각국과 공조해 환율 급락을 방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일본 기업들이 신기술 개발 등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릴 것으로 예상 돼 우리나라도 기술개발을 위한 지원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 일본과 수출 경쟁 품목 50% 넘어
엔저 현상이 지속된다면 일본과의 경합도가 높은 우리나라 수출기업들 상당수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특히 엔화가치 하락 속도가 빠르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일본 기업들은 엔저에도 불구 수출물품에 대한 단가 인하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 수출물량이 오히려 감소한 바 있다.
하지만 엔화가치가 현재와 같이 급속도로 떨어질 경우 일본 내 수출기업들이 점유율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가격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만일 일본 기업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운다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선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우리나라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일본의 상위 100대 품목과 중복되는 품목은 55개에 달한다, 이들 품목의 경우 우리나라 총 수출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우리나라가 얼마나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품목으로는 승용차와 일반기계, 반도체 등을 꼽을 수 있다.
국내 수출품목 중 효자로 꼽히고 있는 자동차는 이미 엔저 공습으로부터 일부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달 현대·기아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7.4%로 올해 7월 8.3%에서 8월 7.9%로 하락한 뒤 9월 7.7%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심혜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원은 “수출단가 인하가 본격화되지 않아 아직 우리나라 수출기업이 받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일본기업들이 향후 급증한 이익과 엔저를 활용한 수출단가 인하를 통해 세계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 엔저, 국내기업 살아남을 전략
전문가들은 장기화중인 엔저현상에 대비하기 위해선 환율방어를 위한 국가 간 공조와 기술개발 투자를 확대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R&D(연구개발)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이는 일본 기업들이 엔저로 얻은 이익증가분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면서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까지 일본 기업들은 큰 폭의 영업이익 증가세를 기록했다. 업체별로 도요타의 경우 지난해 대비 올 1분기 영업이익 증가율은 73.5%를, 스즈키가 29.9%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또 세키스이화학공업(38.4%), 소프트뱅크(35.8%), 미쓰비시중공업(26.1%) 등도 영업이익 증가세를 나타냈다.
즉 우리 수출기업은 중장기적으로 일본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R&D 투자를 확대하고 기술개발 성과 제고 등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아울러 마케팅과 에프터서비스(AS) 강화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기업들의 R&D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세제혜택 등 지원책 마련 등도 필요하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환율 하락 속도 조절 및 기업의 환변동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환율이 급락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미세조정에 나서고, 환위험 관리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환변동 보험을 확대하고, 환리스크 관리 인력 교육도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국가공조를 통해 원·엔 환율 급락을 방지해 기업이 환율변화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R&D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제고하고, 브랜드 가치 향상 등 비가격경쟁력을 높여 수출 산업의 환율 민감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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