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내가 삼성을 창업하고 발전시켜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이 나 개인의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주주가 누구이든 회장과 사장이 누구이든 삼성은 사회적 존재이다. 그 성쇠는 국가사회의 성쇠와 직결된다. 이 계승이 삼성의 확고부동한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고 기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은 그의 ‘호암자전’에서 삼성과 국가와의 관계를 이렇게 언급하면서 이런 배경으로 3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삼성그룹 경영의 계승자로 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의 지나온 역사는 한국경제의 성쇠와 함께해 왔다. 호암은 “언제나 삼성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는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 등이 그것이다”라고 밝혔다. 여기서도 그는 국가적 필요성이란 단어로 국가사회와 삼성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은 해방 후와 6·25동란 전에는 무역을 통해 물자조달을, 휴전 후에는 수입대체 산업을 일으켜 한국경제가 원조경제에서 자립경제로 전환하는 기틀을 잡는데 기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어 중화학공업의 건설로 기간산업의 기반조성에 몰두했다. 이를 터전으로 삼성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정보기술(IT) 등 첨단기술사업을 개척했고, 다수의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즉, 정부가 한국경제의 지향점을 잡으면, 삼성은 이를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확립했다.
이러한 호암의 경영철학은 이건희 회장에게 이어졌고, 이건희 회장도 사업을 전개하는 데 있어 국가발전과 함께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그가 제시한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삼성의 성장과 함께 한국경제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제 이 역할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재용 부회장이 물려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진다. 삼성도 어찌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는 위기론을 강조한 이건희 회장은 입원 직전까지 삼성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에 대해 집착에 가까울 만큼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암이 이건희 회장에게 반도체를 물려준 것처럼, 이건희 회장도 이재용 부회장에게 남겨주고 싶은 새로운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19일 호암 27주기 추모식은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다. 호암이나 이건희 회장 모두 삼성의 국가경제 기여를 강조했지만 반기업 정서와 맞물린 ‘반 삼성 기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삼성의 대표로 뛰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도 이러한 반 삼성 흐름의 중심에 서 있으며, 삼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국회로부터 심한 견제를 당하고 있다. 국가경제가 성장 둔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2014년 현재, 삼성도 휴대전화 사업 부진으로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호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어져오는 경영철학을 어떻게 계승·발전시켜 삼성의 성장을 재현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할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한편, 19일 오전 삼성 호암재단 주관으로 용인 선영에서 열리는 추모식에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 서울에 거주하는 부사장급 이상 임원 1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암 추모식은 공휴일이 아닌 한 매년 기일인 11월19일 용인 선영에서 열렸으며, 20여 년간 삼성, CJ, 신세계, 한솔 등 범 삼성가의 공동 행사로 치러져 왔다. 그러다 삼성과 CJ의 상속 분쟁이 불거진 2년 전부터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 그룹별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CJ, 신세계, 한솔그룹 관계자들은 삼성에서 19일 오전 먼저 추모 행사를 하고 나면 오후에 선영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식과 별도로 진행하는 호암의 제사는 예년처럼 CJ그룹 주재로 18일 저녁 서울 필동 CJ인재원에서 지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