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 “초대형 컨선 건조, 영도의 한(恨)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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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1-2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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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 전경. 오른쪽 제5도크와 안벽에서 9000TEU급 컨테이너선과 5400TEU급 컨테이너선이 건조되고 있다. [한진중공업]


아주경제 채명석(필리핀 수빅) 기자= 2014년 11월 25일, 차로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4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의 제5, 제6 도크(제 1~4도크는 부산 영도조선소에 있음)와 안벽에는 54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6800TEU, 9000TEU급 컨테이너선 10여척이 건조에 한창이었다.

1년 전 찾아갔던 당시 이곳에는 벌크선과 해양플랜트, 컨테이너선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금은 컨테이너선으로 채워진 수빅조선소의 전경 속에서도 유독 제5도크에서 건조가 진행중인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이 눈이 박혔다. ‘영도의 한(恨)’을 풀어준 ‘수빅의 기적’은 바로 이 선박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영도의 한계에 부딪친 미래

일제 치하였던 1937년 7월, 부산 영도에 ‘조선중공업’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국내 조선소 1호 한진중공업. 해방 후 공기업 ‘대한조선공사’로 이름을 바꾼 뒤 1989년 한진그룹에 편입되면서 지금의 사명으로 바뀌었으며, 건설 부문 계열사와 통합한 뒤 2005년 한진중공업그룹으로 계열 분리됐다.

설립 이래로 각종 ‘최초’ 기록을 세운 한진중공업이 있었기에 한국은 현재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후발 기업들이 뛰어들면서 인재들을 빼앗기는 상황에서도 ‘조선사관학교’라는 자존심을 세우며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밀어닥친 선박의 대형화에 따른 조선소의 대규모화 추세 속에서 한진중공업은 설계와 건조 기술에 있어 최고를 유지했지만 협소한 영도 조선소는 임직원들의 꿈을 담아내기에 한계를 노출했다.

다양한 선박에 모두 대응할 수 있지만, 특히 한진중공업은 컨테이너선 건조에 있어서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도 인정할 만큼 탁월했다. 일본을 제치고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한국 수주 독점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영도 조선소에서 건조한 최대 크기의 컨테이너선은 8000TEU급이 다였다. 이 마저도 선박을 건조하는 도크가 협소해 블록을 짜맞춰 건조한 두 개의 선체를 ‘플로팅 도크’로 가져가 바다 위에서 조립했기에 가능했다. 자기 키에 비해 몇 백배나 뛰어오를 수 있는 벼룩을 유리병에 가두면 유리병 높이 밖에 뛰지 못하는 것처럼, 더 이상 큰 컨테이너선을 지을 수 없는 영도 조선소는 한진중공업에겐 유리병 같은 한계였다.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수빅의 마법이 피워나다

국내외 입지를 조사하던 한진중공업은 조선소의 종착지로 ‘수빅’을 결정한다. 한진중공업이 진출한 해외시장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필리핀을 정한 것은 운명이었다. 미군이 주둔하던 해군 기지 부지를 매입해 총 300만㎡(약 90만평) 규모의 부지에 마련한 두 개의 도크, 즉 단일 도크로는 세계 최대인 길이 550m, 넓이 135m, 깊이 13.5m의 6도크는 축구장 7개를 합친 것과 맞먹고, 5도크(길이 370m, 넓이 100m, 깊이 12.5m)도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니다. 이들 도크는 한진중공업이 영도 조선소를 벗어나려는 한진중공업의 의지의 상징이다.

2006년 착공을 해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9년 완공된 수빅 조선소의 운명에 대해 시장에서는 또 하나의 투자 실패사례가 될 것이라는 가혹한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현지 기능인력, 빈약한 필리핀의 조선업 기반에 수반된 조선업 불황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는 새로운 발상으로 수빅 조선소를 만들었다. 전 세계 모든 조선소들의 장점을 결합해 가장 효율적인 동선으로 작업장을 배치했고, 조업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시켜 생산원가를 최소화 했다. 또한 숙련공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 훈련원을 세우고, 훈련원 출신 직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필리핀 기업에서 정규직 직원 비중은 대단히 낮은 데, 한진중공업의 이같은 채용제도는 현지에서 파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불어 직원들을 위한 대단위 주거단지인 ‘한진빌리지’를 조성하고 학교를 설립하는 등 직원들을 끌어안기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감 부족으로 쓰러지는 조선소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수빅 조선소는 오히려 수주 물량을 확대해 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빅3와 규모의 경쟁 개시

수빅 조선소를 구상하면서 한진중공업이 지향한 목표는 컨테이너선이다. 수빅 조선소 착공과 동시에 수주한 첫 선박도 4300TEU급 컨테이너선이었다. 이어지는 수주에서도 컨테이너선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향한 한진중공업의 꿈은 지난해 1만1000TEU급 5척을 수주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수빅 조선소가 영도 조선소라는 ‘유리병’을 넘어선 것이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는 수빅 조선소가 규모를 앞세워 고부가가치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건조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조선소임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수빅 조선소는 지난달 이 선박의 건조를 개시했다. 이르면 내년 초 즈음 도크에서 초대형 선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안진규 수빅조선소 사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수빅 조선소를 기반으로 한진중공업은 조선 빅3와 본격적인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극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이 곳(수빅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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