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그동안 친중노선을 걸어왔던 대만의 집권당인 국민당이 29일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3월 대만에서 벌어진 학생시위에서 확인된 반중정서가 이번 선거에서 다시한번 나타난 것이다. 선거 패배의 주요원인 역시 현 집권당의 친중노선이 지목된다. 홍콩에서의 반중시위가 그렇지 않아도 비등하던 대만의 반중정서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홍콩에 시행중인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국가 두 체제)'는 중국의 공식적인 대만 통일방안이다. 홍콩과의 일국양제 성패는 대만민심에 직결된다. 중국이 대만과의 외교에서나 홍콩관리 문제에서 속도조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친중 국민당 참패
대만의 집권당 국민당이 29일 실시한 지방선거에서 그야말로 참패를 거뒀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국민당은 6개 직할시 중에서 주리룬(朱立倫) 신베이(新北)시장을 연임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 전통적인 표밭인 타이베이(台北)와 타이중(台中)을 비롯한 5군데에서 패배했다.
타이중시에서는 민진당 린자룽(林佳龍) 후보가 현직인 후즈창(胡志强) 후보를 제쳤고, 타오위안(桃園)시에서는 민진당 정원찬(鄭文燦) 후보가 국민당 우즈양(吳志揚) 후보를 이겼다. 가오슝(高雄)과 타이난(台南)에서도 민진당 천쥐(陳菊) 후보와 라이칭더(賴淸德) 후보와 국민당 양추싱(楊秋興) 후보와 황슈솽(黃秀霜) 후보에 압승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이밖에도 이번 선거에서는 직할시장 외에도 현장과 현급시장 16명, 직할시 의원 375명, 현과 현급시 의원 532명 등 모두 1만1130명을 선출했다. 현장과 현급시장 16곳에서 역시 민진당이 9곳을 석권하며 대승했다. 국민당은 5곳, 무소속이 2곳을 나눠 가졌다. 직할시 의원은 민진당이 167석, 국민당 151석, 무소속 42석, 친민당 5석, 신당 2석, 대련(臺聯) 5석, 무당단결연맹 2석, 녹당 1석을 각각 차지해 민진당이 승리했다.
◆행정원장 사퇴, 마잉주 레임덕
대만 지방선거 결과가 나오자 국민당은 선거패배를 인정했다. 국민당 주석인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29일 저녁9시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를 겸허하게 수용해 조속히 개혁에 나서겠다"며 "이번 참패를 거울삼아 일치단결해 당과 국민을 위해 분투하자"고 말했다. 대승을 거둔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은 "이번 승리는 대만 국민의 승리"라며 "정부가 국민 편에 서지 않으면 국민이 수시로 권력을 회수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선거당일이었던 29일 대만 장이화(江宜樺) 행정장관은 여당 국민당의 통일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장 행정원장은 이날 타이베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이 선거로 나타났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장 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마 총통은 즉각 후임 행정원장을 임명해 행정원 개편에 나설 방침이다.
마잉주 총통은 2008년 총통선거에 승리하며 집권했고 2012년 1월 재선에 성공했다. 집권2기 임기를 1년 가량 남긴 시점에서 나타난 지방선거 참패는 앞으로 마 총통을 레임덕으로 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추진하던 정책들은 추진력을 잃어갈 것이고 반면 민진당 등 야당의 목소리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당 정권재창출 먹구름
타이베이 시장직은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이나 천수이볜(陳水扁·민진당) 전 총통 등이 모두 거친 요직으로 정치적인 상징성이 큰 곳이다. 또한 타이베이는 지난 4번의 시장 선거에서 모두 국민당 후보가 당선된 곳으로 국민당의 텃밭이기도 하다. 국민당은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큰 표 차이로 패하면서 2016년 1월 있을 총통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졌다. 또한 내년 초부터 대만의 정국은 대선정국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에 국민당 간판으로 나온 롄성원 타이베이 시장 후보는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 박사출신으로, 교통카드업체를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반면 이번에 승리한 커원저 후보는 외과 의사 출신으로 이번에 공직에 처음 출마한 신인이다. 각종 현안에 대한 직설적인 발언으로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다. 제1 야당인 민진당은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처음으로 후보를 내지 않고 커원저를 지지했다. 커 당선자는 10%P이상의 득표율 차이로 롄 후보를 눌렀다.
◆친중정책 불안감에 민심이반
국민당의 참패 원인으로는 마 총통 취임 이후 6년간 지속되어온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만족할 만한 실물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꼽힌다. 지난달 말 발표된 대만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78% 증가했다. 2분기 성장률(3.74%)과는 비슷했지만 블룸버그가 전문가를 대상으로 집계한 예상치(3.9%)보다 낮았다. 주력 산업인 정보기술(IT) 분야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외형적으로는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정부에 대한 불만은 청년층에서 특히 높다. 주택 가격과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반면 일자리는 중국 본토로 이동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학생들이 불만을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대만의 학생단체들은 중국과 대만의 서비스무역협정에 반대해 대규모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이 발효되면 대만 경제가 지금보다 더 중국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BBC는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소를 인용해 “마 총통 취임 후 중국과 경제적 교류가 늘었지만 일반인들의 경제 여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서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늘어난 이익의 대부분이 기업으로 흘러간 데 불만이 많다"고 분석했다.
◆홍콩시위, 불안감 키워
대만 연합보는 최근 "민심이 국민당을 떠나고 있다"며 이런 반(反)국민당 정서의 주요 원인은 홍콩 시위 사태 등을 목격한 대만 유권자들이 친중(親中) 정책을 펴온 국민당 정권에 고개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여기에 최근 동물성 음식 쓰레기로 만든 식용유가 유통된 '하수구 식용유' 사건 등 민생 관련 불만이 겹치면서 마 총통의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했다.
특히 최근 홍콩시위는 대만 국민들의 민심을 더욱 반중정서로 인도했다. 대만 국민들은 중국이 '일국양제'를 내걸고도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이 모델을 대만과의 통일에도 강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홍콩의 민주화 시위 직후 대만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통일을 지지하는 비율은 12%로 떨어졌다.
◆양안관계 분기점 되나?
중국과의 양안관계 화해를 추진해온 국민당의 정권기반이 약화된다면 중국은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중국은 일국양제 체제하에서 대만과의 통일을 추진해오고 있었다. 국민당은 중국과의 대화에 유연한 입장이며, 민진당은 대만독립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국민당의 장기집권을 내심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대만의 선거결과가 발표된 이후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29일 "우리는 이번 대만 선거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며 "양안 동포들이 어렵게 얻은 양안 관계의 성과를 소중하게 여기기를 희망하고, 양안 관계의 발전을 함께 수호하고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정부의 이같은 반응은 그동안 친중 정책 위주의 정책을 추진해온 국민당을 대신해 '대만독립' 노선을 추구해온 제1야당인 민진당이 약진함에 따라 양안 관계도 재조정 국면에 돌입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하면서 향후 대만과 중국의 양안 관계에는 적잖은 파장이 미칠 전망이다. 중국이 마 총통 정부와 추진해온 양국간 서비스무역협정 체결 협상을 비롯해 각종 정치·경제협력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