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장슬기·박선미 기자 = 금융권에 관치의 망령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에만 은행연합회장에 이어 우리은행 차기 행장자리를 놓고 관치 논란이 한창이다. 금융권의 오랜 '흑역사'가 근절되기는 커녕 되레 심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정권 실세' 꼬리표 붙은 4대 천왕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관치 망령의 역사는 직전 정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금융권을 주름잡았던 '4대 천왕'이 그 예다.
4대 천왕은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말한다. 이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4년 1개월로,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른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어윤대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 교수로서 총장을 지내고 MB정부 출범에 맞춰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았다. 이팔성 전 회장도 한일은행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뒤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로 영입됐으며, 2008년 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금융 회장이 됐다.
이 회장과 함께 한일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출발한 김승유 전 회장도 연임에 성공, 6년 4개월간 회장직을 맡다가 MB정부 말기인 2012년 3월 물러났다. 강만수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야인'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었으며, MB정부가 출범한 2008년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들 4대 천왕은 저마다 굵직한 현안을 추진했지만 늘 '정권 실세'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주어진 권한을 넘어 자회사 인사와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강 전 회장의 경우 정권 실세에 대한 특혜라는 비난 속에 우리금융 인수 후보에서 원천 배제됐으며, 산업은행 민영화는 현 정부 들어 사실상 폐기됐다. 어 회장 역시 정권 말 ING생명 인수가 사외이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됐으며, 내부 보고서 유출로 측근이 징계를 받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특히 권력을 등에 업은 인사가 금융권의 요직을 오가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성숙도는 올해 80위다. 4대 천왕 임명 직전인 2007년에는 27위였다.
◆각 협회장직 '퇴임관료 위한 자리' 지적도
제2금융권도 관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논란이 일면서 최근 생명보헙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협회장이 민간 출신으로 재편됐지만 약 10여년간 관료 출신이 줄곧 맡아왔다.
현재 여신금융협회는 김근수 전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이, 저축은행중앙회는 최규연 전 조달청장이 맡고 있으나 임기 후 민간 출신으로 바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손보협회의 경우 올 초 회장직에 김교식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사실상 내정된 바 있다. 하지만 관피아 논란이 불거지면서 인선이 미뤄지고 1년여간의 공석 후 결국 장남식 전 LIG손보 사장이 선임됐다.
생보협회도 지난달 이수창 전 삼성생명 사장이 단독 후보로 추천됐지만 역시 10여년 만의 첫 민간 출신 회장에 해당된다. 이전까지 생보협회는 10년간 옛 재무부 등 관료 출신들이 회장직을 도맡아왔다.
서울보증보험의 경우도 기획재정부 출신들이 사장직을 맡아왔다. 이에 따라 김병기 사장의 연임이 유력시되고 있었지만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지면서 결국 김옥찬 전 KB국민은행 부행장을 선임했다. 서울보증보험의 첫 민간 출신 사장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각 협회장을 관료 출신들이 맡아오면서 협회장직은 사실상 퇴임 관료를 위한 자리였다"며 "민간 협회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같은 논란은 사라지겠지만 이제부터는 민간출신 협회장에게 힘을 싣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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