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드 연기의 대명사 황정민 표 노인연기는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컸고, ‘국제시장’ 속 황정민은 명성이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 이름이 날 만한 까닭이 있음을 증명했다. 지난 12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황정민을 직접 만나 그가 자연스러운 노인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었다.
“(촬영 당시에)살이 좀 빠졌어요. 분장이라는 게 피부 겉에 무언가를 붙여야하는 거니까 살을 좀 빼야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솔직히 저는 분장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관객 입장에서 제가 황정민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요. 기술적인 문제는 선수(영화 관계자 또는 기자)들이나 알아보는 거니까요. 관객에게는 그냥 ‘노인분장을 했네’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가장 분장이 빨리 끝나는 업체를 선정해달라고 했어요. 분장하느라 지쳐서 정작 찍어야할 연기를 못한다면 안된다고 했죠.”
윤제균 감독과 이런 저런 상의를 끝내고 황정민이 향한 곳은 서울 종로 탑골공원이었다. 그곳에서 살다시피 한 황정민은 ‘어떻게 해야 노인으로 보여지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 위치한 재래시장인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한다.
황정민은 윤제균 감독으로부터 ‘국제시장’이 어떤 영화인지 듣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리에 덥석 손을 잡았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영화는 많이 있었지만 아버지에 관한 영화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영화인줄 모르고 하겠다고 하고 대본을 받았다”며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아버지란 누군가의 아들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공통분모와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부모님께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가 심한 건 어머니였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만큼 대화가 적었는데, 그래서 황정민은 아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더 노력한다고 말했다.
황정민은 ‘국제시장’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덕수가 방송사에서 진행한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에 출연한 장면인데, 실제로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엑스트라로 등장했다.
방송을 통해 여러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찾거나 또는 가족이 아니라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덕수도 그 중 하나였다. 황정민은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수많은 보조출연자들이 함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울음을 터트리면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감정이 됐다고 황정민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국제시장’이 세대 간 소통에 한몫하길 바랐다. 영화를 본 젊은 친구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한 번 본다면, 잠깐이지만 옛날 얘기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대화가 봇물처럼 터지길 기원했다.
“‘또 옛날 얘기야?’라는 분들도 계실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우리 삶의 일부분이고 어머니 아버지가 겪었던 일이니 볼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60년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먼 얘기가 아닙니다. 고향이 북쪽인 분들에게는 더욱 의미가 있겠고요.”
끝으로 황정민에게 스스로 덕수와 비교해 어떤 아버지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덕수보다 조금 다행인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라는 그는 “저도 덕수만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9살 아들한테도 항상 얘기한다. 하고 싶은 걸 찾길 바란다고. 오락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버지 세대 덕분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