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 국가·기업 이미지 훼손…정부 "대기업 책임의식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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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2-1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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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들 "대기업·재벌, 사회적 책임 자각·이행 필요"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정부가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불거진 재벌에 대한 국민 반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대기업의 책임 의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이번 사건을 개별 대기업과 사주 3세의 문제로 규정하면서도 정부의 기업 정책 방향에 대해 "중소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 대기업의 책임 의식을 높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땅콩회항' 사건은 미국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탑승구를 떠난 항공기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지시로 되돌아가고 사무장이 비행기에서 내린 사건을 말한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대한항공이나 사주 가족의 문제여서 한국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기업, 특히 재벌에 대한 국민 반감을 더 확신시킬 수 있고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가들과 정부의 경제 부처 관계자들은 이번 파문의 원인을 기업이나 재벌에 대한 제도적 문제라기보다는 기업의 의사소통 방식과 재벌 3세의 도덕적 결함 등에서 찾고 있다.

한국 대기업의 경직된 의사소통 문화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이번 사건의 장본인인 조 전 부사장은 항공 운항 규정을 무시한 채 출발한 항공기를 돌리라고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기장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많은 승객이 탑승한 항공기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 이미 출발한 게이트로 돌아가게 한 조 전 부사장의 행위는 물론, 규정에 어긋난 사주 3세의 지시에 아무런 의견 제시를 하지 못하는 대한항공의 사내 의사소통 문화 역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의 의사소통 문화 부재와 함께 재벌 3세들의 고립적 문화도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재벌 3세대는 사회에서 격리돼 자기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들끼리만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만들어 사회로부터 공감 받는 리더십을 키워오지 못했다"면서 "이런 점이 재벌 3세대가 가진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렇게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을 책임지게 됐을 때 이번 사건처럼 의도하지 않은 위험 요소를 돌출시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 고위급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그들(재벌)의 성장환경이 일반인과 달라 때로는 협업이 필요하고 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경영에 참여할 충분한 자질과 능력이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2세와 3세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을 맡기는 대기업 사주들의 관행도 문제"라면서 "미국의 경우 상속자들 중에서 대주주로만 남아 있고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땅콩 회항 사건이 한국과 기업에 대한 이미지 훼손은 물론 반기업 정서를 증폭시키고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 부처의 한 간부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사주 일가의 개인적인 문제여서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부정적인 영향은 불가피하다"며 "이번 사건이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나빠지게 할 수 있고 평창올림픽 유치 등으로 얻은 긍정적 '무형 자산'을 갉아먹는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와 BBC, 가디언, AP, AFP, 블룸버그 등 세계 주요 언론이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대한항공은 물론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손상됐다.

더 큰 문제는 국민 사이에서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고 계층 갈등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대내외 경제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면 기업들로서도 득이 될 게 없다.

경제 부처 관계자는 "이런 사태가 계속 된다면 '반기업'이나 '반재벌' 정서를 넘어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될 수 있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사주들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는 "대한항공 이사회 시스템 등 법과 제도에 결함이 있기보다는 기업의 권위주의적 문화, 사주 일가의 전근대적 인식수준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총수 일가와 3세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국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자각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면서 "그 속에서 책임을 이행하는 훈련을 지금부터라도 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범열 LG경제연구원 경영연구부문장은 "경영자가 리더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면서 "리더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 조직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경제 부처의 다른 간부는 "재벌 기업 사주들이 정부 정책 수혜로 기업을 성장시켰던 만큼 이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사회 환원 의무를 실천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재벌과 대기업 오너의 기업 사유화가 당연시되면서 악화된 몰상식의 극치이자 '슈퍼 값질'의 대표적 사례로, 유야무야 넘어가선 안 된다"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업 정책에 관여하는 한 정부부처 간부는 "자유무역협정(FTA), 고환율 등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시행했던 정책의 일부가 대기업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대기업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대기업이 이런 식의 윤리·도덕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간부는 "정부는 더 이상 산업기반이 약했던 과거처럼 대기업 지원 정책을 쓰지 않고 현재는 소상공인 진흥기금 등 중소기업 육성에 산업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 대기업의 책임 의식을 높이는 쪽으로 전반적인 기업 정책의 방향을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비롯해 가계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등 기업의 과도한 사내 유보금을 투자나 임금 인상, 배당 등을 통해 가계의 소득확대 등에 활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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