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국제유가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원유가격의 조절 역할을 해 온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1월 총회에서 감산 합의에 실패했다. 그 후 유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으나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슨 의도를 갖고 유가하락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일까.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Saudi Aramco)는 이달 초 내년 1월 석유가격 조정금을 인하하겠다고 일본 석유회사에게 통보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이는 사실상의 석유가격 인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셰일오일을 억제하기 위해 가격전쟁을 시작했으며 지금도 손을 뗄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뒷받침 하듯 연일 빠른 속도로 국제유가는 하락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유가 시장에서 힘을 과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유자재로 감산할 수 있는 생산 여력에 있다. 사우디가 생산 여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국제정치, 국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국가전략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번 OPEC 총회에서 사우디가 감산을 끝내 합의하지 않은 판단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 시장은 주목하면서 반응하고 있다.
이 신문은 사우디가 지난 1985년 제2차 오일쇼크에 대한 통한의 기억이 있다고 지적했다. 1985년 국제유가가 하락했을 때 원유 가격의 유지를 노린 사우디가 감산에 나선 결과 시장 점유율을 크게 잃었다는 것이다.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사우디의 이번 감산 보류는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다른 국가를 돕지 않겠다는 교훈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사우디는 시장에서 퇴출해야 하는 것은 셰일오일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테이쿄헤이세이 대학(帝京平成大学)의 한 교수는 “2000년대 전반 상황이 참고가 된다”고 지적하면서 “당시 소련 붕괴에 따른 원유생산 침체에서 회복세에 있던 러시아는 급속히 원유생산량을 늘리면서 감산을 통한 원유가격 하락을 막으려던 OPEC 회원국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당시 중국 등 신흥국의 수요 증대로 러시아와 사우디 간 주도권 경쟁으로 확대됐다. 사우디는 1985년과 2000년의 경험에서 산유국의 생산 조절력 행사에 무임승차하는 다른 산유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돌아서게 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셰일오일의 증산으로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3년 동안 하루 300만 배럴을 넘어섰다. 셰일오일의 증산으로 사우디가 감산해도 과잉공급 해소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우디는 오히려 국제유가 하락을 용인해 셰일오일 등 고비용 유전의 생산량을 억제시킨 후 잃어버린 원유생산 조절력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사우디의 기본전략은 ‘석유시대’를 하루라도 더 연장시키고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석유수입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이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를 주도하고 OPEC 전성기를 구축한 세이크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 석유장관은 “석기시대는 돌이 없어졌기 때문에 끝난 것이 아니라 돌을 대체할 기술이 나타났기 때문에 끝난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석유도 똑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우디는 이러한 자세에서 변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고유가가 이를 대체할 셰일오일의 개발을 촉진시킨 원인을 제공했다. 석유자원을 떠나는 소비자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사우디는 자국의 조절력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렸으며, 그 결과 감산없이 셰일기업이 타격을 입을 가격으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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