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금마에서 왕궁리 오층석탑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으로는 논이 펼쳐진다. 그 논 가운데 석불 두 기가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고도리 석불입상'이다.
이 석불은 고려시대 말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46호로 지정돼 있다.
이들은 큰 소리로 부르면 들을 수 있지만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가깝고도 먼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고려 말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46호 전북 익산 금마 고도리석불입상 [사진제공=익산시]
여기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이 둘은 각각 남자(서쪽)와 여자(동쪽)인데,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옥룡천이 꽁꽁 얼어붙으면 서로 만나 안고 회포를 풀다가 닭이 울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철종 9년(1858)에 익산 군수로 부임해 온 최종석이 쓰러져 방치되어 오던 것을 현재의 위치에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그 때 씌어진 '석불중건기'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금마는 익산의 구읍자리로 동ㆍ서ㆍ북의 삼면이 다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유독 남쪽만은 터져 있어 물이 다 흘러나가 허허하게 생겼기에 읍 수문의 허를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한다. 또 일설에는 금마의 주산인 금마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말에는 마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부로서 인석(人石)을 세웠다고 한다."
불상이라 불리고는 있지만 긴 기둥 같은 몸체에 네모난 얼굴, 가는 눈, 짧은 코, 옅은 웃음기를 담은 작은 입 등은 장승과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로 변해가는 들판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소박해서 더욱 믿음직하다.
200m 정도 사이에 두고 있는 익산쌍릉(무왕왕과 왕비릉)과 정말 묘하게 둘이 닮아 있다.
두 석인상 사이에 다리가 있으니 매일 밤 만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견우와 직녀처럼 올 음력 섣달 그믐날 만나는 지 어디한번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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