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배상희 기자 =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의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국제 유가 하락과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 운명에 처한 러시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중국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는 최근 러시아를 흔들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서 투자 기회를 포착하려는 중국 기업들이 늘고 있으며 특히 석유 사업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고 22일 보도했다.
중국의 대형 석유·천연가스 업체 런즈여우푸(仁智油服)의 한 관계자는 "현재 러시아로의 투자 기회를 물색하고 있으며 좋은 유전개발 사업이 있다면 매입을 원한다"며 "이미 러시아 측과 관련 사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 년 전 러시아 석유사업에 진출한 장쑤(江蘇)성 멍란그룹(夢蘭集團)의 1대 주주인 펑판주식(風範股份·601700 SH)은 조만간 30억 위안(약 53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 그 중 26억5000만 위안을 러시아 동부 아무르주(州)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헤이허(黑河) 변경의 석유 저장·운송·제련 시설 건설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의 총 투자자금은 79억1300만 위안으로,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액화천연가스, 나프타, 휘발유, 디젤유, 석유코크스 등 석유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그 중 100만t 가량의 정제 디젤유를 러시아 내에서 판매하고, 기타 생산품은 송유관, 철도, 고속도로를 통해 중국으로 납품한다는 계획이다.
러시아의 대(對)중국 석유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 또한 중국 기업의 러시아 석유 산업 투자를 부추길 전망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러시아가 중국으로 수출한 석유 규모는 전년동기대비 65% 늘어난 331만 톤(t)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아시아로 수출한 석유 6000만t 중 4000만t은 중국으로 수출됐을 정도로 양국의 석유 거래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 또한 중국 기업의 투자 움직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중국의 저우추취(走出去·해외투자) 추세와 맞물려 중국 기업의 러시아 투자는 리스크보다 기회가 더욱 많을 것"이라고 평했다.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 틈새를 공략, 부동산 저가매입의 기회를 노리는 중국기업들도 늘고 있다.
러시아 보수 세력과 정권 내부에서는 이번 루블화 폭락 사태에 대한 ‘미국 음모설’이 급격히 퍼지고 있다. 미하일 프라드코프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장관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는 석유 가격 급락은 미국이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리 출신인 프라드코프 국장은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하려는 미국의 기도에 강력히 경고한다”며 미국의 그런 기도는 기밀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도 4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가진 연례 기자회견에서 "과거 히틀러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며 "사람들은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운을 뗀 뒤 "우리는 어떤 시련에도 맞서 이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여론조사센터에 따르면 현재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85%를 유지하고 있으나 경제상황의 악화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러한 상황이 미국 음모론으로 포장되면서 푸틴 정권이 경기침체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루블화 폭락 사태가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상황과 흡사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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