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과 통합진보당 해산 등이 맞물린 연말정국에서 ‘기업인 가석방’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가석방은 징역이나 금고형의 집행 중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복역한 경우 조건부로 석방하는 제도다.
2013년 정권 출범 이후 2년간 경제성장도 경제민주화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사실상 기업인 특혜인 ‘가석방’ 카드를 최종 선택할 경우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들끓는 민심이 정치인 등 특권층의 ‘기득권 내려놓기’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을미년(乙未年) 새해 벽두부터 자칫 민심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수 있다는 얘기다.
◆당·정, 기업인 가석방 공동보조…비난 일자 靑은 한 발 빼기
기업인 가석방 카드의 최초 발화 지점은 당·정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골자로 하는 ‘초이노믹스’ 구상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경제성장이 불투명하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활성화 제고 수단으로 ‘기업인 가석방’ 카드를 꺼냈다.
앞서 최 부총리는 크리스마스 전후로 ‘기업인 가석방’을 청와대에 건의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경제살리기를 위한 정부의 이 같은 구상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도 26일 기업인 가석방과 관련,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 원칙에 부합하면서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틀 속에서 정부가 협의를 해 온다면 야당과도 접촉해 컨센서스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갑질’을 언급하며 기업인 사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기업인 가석방에 대해선 함구로 일관했다. 당·정이 국민적 비난여론을 의식, 사면보다 한 단계 아래인 기업인 가석방에 공감대를 형성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당·정이 기업인 가석방을 앞장서 추진하는 것과는 달리, 청와대는 한 발 빼는 모양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기업인 가석방과 관련, “법무부 장관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면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은 18대 대선 당시 ‘특별사면권’의 엄격한 제한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취임 후 현재까지 이를 추진하지 않았다.
국민과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는 집권 3년차 초 박 대통령이 기업인 가석방 카드를 띄우며 경제활성화를 위한 승부수를 던질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58.1% 기업인 가석방 반대…野 내분 의견 분분
문제는 국민여론과 야권의 반발이 극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특별법에 갇혀 수개월간 ‘정치 공동화’ 현상을 초래한 정치권이 이를 전격 추진할 경우 민심의 반발이 극에 달하면서 국정동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중앙일보의 종합방송편성채널인 ‘JTBC’ 의뢰로 24일 긴급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속된 경제인의 가석방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58.1%에 달했다.
이는 ‘찬성한다’는 의견(22.0%)의 약 세 배에 이르는 수치다. ‘잘 모름’은 20.3%로 집계됐다.
특히 6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계층이나 집단에서 ‘경제인 가석방 반대’ 의견이 ‘경제인 가석방 찬성’ 의견보다 우세한 것으로 드러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지율 추가 하락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정당 지지층별 조사 결과, 새정치연합 지지층의 72.0%는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새누리당 지지층(42.0%)과 무당층(59.0%)에서도 반대 의견이 높았다. 찬성 의견은 △새누리당 지지층 36.7% △새정치연합 지지층 8.8% △무당층 16.6%로 조사됐다.
이념 성향별로는 반대 의견은 △중도층 71.4% △진보층 56.7% △보수층 44.8%, 찬성 의견은 △보수층 35.9% △진보층 23.5% △중도층 14.4% 등의 순이었다.
세대별 조사에서는 60세 이상(찬성 42.7%, 반대 25.4%)에서 찬성 의견이 다수인 반면, 50대 이하 모든 연령대에서는 반대 의견이 다수였다.
특히 30대에서 83.2%로 가장 높았고 이어 △20대(19세 포함) 67.3% △40대 63.0% △50대 54.8% 순이었다. 찬성 의견은 △40대 20.2% △50대 18.9% △20대 15.3% △30대 10.6% 등의 분포를 보였다.
지역별 조사에 따르면 반대 의견은 서울(71.1%)에서 가장 높았고 △대전·충청·세종 69.8%△경기·인천 59.8% △부산·경남·울산 △대구·경북 49.0% 등이 뒤를 이었다. 찬성 의견은 △대구·경북 28.0% △대전·충청·세종 24.6% △부산·경남·울산 22.7% △경기·인천 18.3% △서울 14.6% 등으로 조사됐다.
야권 내부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이와 관련해 “나라경제 어렵게 만드는 비리 기업인에게는 더욱 엄격히 죄를 물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원 의원은 “정부여당이 비리기업인 가석방 사면을 위한 군불 때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며 “재벌의 엄정한 법집행 근거를 마련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파렴치한 관행을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 중대범죄를 위한 사면행사는 더욱 엄격히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나마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약속”이라고 힐난했다. 반면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부의장은 같은 날 “법이 정한 여건을 충족하는 경우라면 기업인이라서 해서 가석방에서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인 가석방을 둘러싼 야권 내부 의견이 일치되지는 않았지만, 당론이 가석방 불가 쪽에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이 기업인 가석방 카드를 꺼낼 경우 야권의 ‘약속 파기’ 프레임이 또다시 정국을 뒤흔들 전망이다.
한편 이번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50%)와 유선전화(50%)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 포인트다.
한편 이번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50%)와 유선전화(50%)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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